[조준현의 경제雜說] 우리가 지켜야 할 로마는 어디에 있는가?
입력 2011-10-20 17:55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요즘은 이런저런 비유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지만, 원래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은 실제로 로마제국 시대 이탈리아 반도의 모든 도로가 로마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는 매우 뛰어난 건축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도로뿐 아니라 콜로세움 같은 유적들은 로마의 건축기술이 얼마나 높고 또 화려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지금도 남아 있는 로마의 건축물 가운데 가장 탁월한 것은 바로 공중목욕탕이다. 로마인들은 목욕을 매우 좋아했다. 그런데 귀족이나 부자들은 대저택에 자신만의 목욕탕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민들은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상하수도 시설을 갖춘 대규모의 공중목욕탕을 건설했는데, 한창 때는 로마 시내에만 170개가 넘는 목욕탕이 건설되었다. 그 가운데는 3000명 이상의 사람이 동시에 목욕을 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목욕탕도 있었다.
그런데 역사학자들 가운데는 로마가 목욕탕 때문에 망했다고 이야기하는 분이 많다. 우스갯소리지만 이 이야기를 생물학자에게 했더니, 더운 물에 목욕을 너무 자주 하면 정자 생산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물론 그런 이유로 로마가 망한 것은 아니다. 목욕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은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화려한 목욕탕을 짓기 시작했다. 목욕탕의 벽은 그리스나 이집트에서 가져온 값비싼 자재들로 지어졌고, 바닥은 화려한 모자이크가 장식되었다. 이렇게 사치스러운 목욕탕에서 귀족들은 매일 밤 환락을 즐겼다. 귀족들은 욕탕에 몸을 담근 채 비싼 술과 음식을 즐겼고 시중 드는 노예들이 따라다녔다. 문제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람의 배는 한정되어 있어서 더 먹고 더 마시면서 더 많이 쾌락을 즐기고 싶어도 배가 불러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 귀족들의 저택에는 목욕탕 옆에 토하는 방이 따로 있었다. 배가 차면 옆방에 가서 토하고 다시 술과 음식을 즐겼다고 한다.
귀족들이 그런 퇴폐 생활을 즐기는 동안 로마의 평민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남자들은 몇 년씩 전쟁에 나가야 했다. 가장이 없는 동안 남은 가족들은 빚을 얻고 땅을 팔아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들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집도 땅도 모두 빚쟁이들에게 넘어간 뒤였고, 아내와 자식들은 거지가 되거나 귀족들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로마가 세계 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평범한 시민들이 기꺼이 목숨 바쳐 자기가 속한 사회를 지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족들의 탐욕으로 집과 땅과 가족을 모두 잃고 만 시민들은 더 이상 그런 로마를 지키고자 하지 않았다. 그래서 로마는 목욕탕 때문에 망했다는 이야기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빈곤과 불평등은 있어 왔다. 그러나 어느 정도 불평등하다 하더라도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에서는 빈곤층도 중산층으로 상승할 수 있는 희망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빈곤층도 자신이 속한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중산층으로 상승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한다. 마찬가지로 상류층은 설령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하락하더라도 빈곤층으로 바로 떨어지는 경우는 드물고 중산층 수준은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불안감을 덜 느낀다.
이런 사회에서는 당연히 사회에 대한 구성원들의 소속감이 높고 구성원들 간에 예의와 존중이 넘친다. 그러나 양극화된 사회에서는 상류층과 빈곤층을 이어 주는 중산층이 없기 때문에 빈곤층이 상류층으로 상승할 기회나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 마디로 희망 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상류층 역시 자칫 하락하게 되면 곧바로 빈곤층으로 떨어지고 마니 언제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 당연히 구성원들 간에 불신과 갈등이 쌓이고, 없는 자에 대한 경멸과 있는 자에 대한 분노가 작은 빌미만 있으면 폭력적인 형태로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금융은 현대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세계금융의 상징인 미국의 월가에서 금융자본의 과도한 이익 추구와 소득 불평등에 분노한 시민들이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구호를 외치며 한 달 넘게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금 월가에서는 ‘1%를 위하여 희생당하는 99%’라는 절규가 터져 나온다. 금융자본의 탐욕에 항의하는 시위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돼 지난 주말에는 82개국 1500여 도시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났다. 규모가 가장 컸던 것이 바로 로마인데, 무려 5만여명이 모였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시위에 나선 이들의 요구는 하나같이 신자유주의 반대,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 실업 대책 등이다. 한 마디로 보통사람들의 최소한의 자립과 자존을 보장하고, 스스로 가족과 가정을 지킬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과연 이런 사태로부터 우리나라는 예외일까? 당연히 아니다. 같은 날 서울에서도 수천명의 시민이 광화문 등 여러 곳에 모여 집회를 가졌다. 그러나 정작 대한민국에서 이런 분노의 외침은 월가에 시위대가 모이기 훨씬 이전부터 있어 온 일이다.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에 항의하면서 농성 중이고, 대학생들은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학교를 졸업해도 청년들에게 주어질 일자리는 없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다.
점점 더 심화되는 빈곤과 불평등은 보통사람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고 있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지금 대한민국에 ‘우리가 지켜야 할 로마’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