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목회 현장-서울 꿈누리교회 라영환 목사] 예배당 대신 카페… 커피 손님이 성도 됐어요
입력 2011-10-19 20:40
교회 개척 2년 만에 50명 성도로 부흥했다. 성도 대부분은 20·30대. 신자 절반이 입소문을 타고 교회에 왔다. 작년 교회 지출액은 2500만원. 올해 6월까지 3000만원을 지출했다. 이 돈으로 청소년 장학금과 선교사 후원, 신학생 지원까지 했다. 목회자 사례비는 없다. 그런데도 목사나 성도들은 행복하다.
꿈누리교회(blog.daum.net/dreamnuri) 라영환(48) 목사는 실험적인 목회를 하고 있다. 2년 전 교회를 개척하면서 예배당 대신 카페를 차렸다. 라 목사는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며 세상과 소통한다. 주일 예배는 서울 방배동 음향기기 전문업체인 ㈜소비코 지하 강당을 빌려 쓴다. 예배당은 없지만 신자 모두 희망에 차 있다.
17일 서울 사당동 카페 ‘비블리오떼끄’에서 만난 라 목사는 “무슨 커피 마실래요” 하며 물었다. 청바지에 하늘색 셔츠, 군청색 재킷, 그리고 짧게 깎은 머리와 검은 테 안경. 전형적인 목회자 외모와는 다른 인상을 풍기는 그가 아메리카노를 들고 나왔다. 라 목사는 갑자기 두손을 내밀었다. 불그스레한 빛깔에 작은 수포가 보였다. “주부 습진이에요. 제가 우리 교회에서 설거지를 제일 많이 하거든요. 하하하.”
-개척 2년 만에 50명 성도면 그런대로 부흥한 것 아닌가요.
“주위 목사님들이 개척 멤버가 몇 명이냐고 묻곤 하는데 가족뿐이었어요. 대신 카페를 통해 사람들을 만났어요. 손님이 왔다가 카페 주인이 목사이고 책도 많이 꽂혀 있으니 궁금해하지요. 혼자 온 사람들은 사연이 있더라구요. 그렇게 얘기 들어주고 성경공부도 시작하면서 복음을 소개하게 됐어요.”
-성장 비결이 뭔가요. 카페를 통한 문화적 접근과 프로그램인가요.
“성도들은 저마다 ‘스토리’가 있습니다. 우울증을 앓던 청년이 성경공부하면서 약을 끊었고, 방송국 기자가 카페 손님으로 왔다가 2주 전엔 거듭났다고 고백했어요. 사업이 안 되고 취직이 안 되던 성도들이 6개월 만에 해결됐다고 간증을 해요. 비결은 없습니다. 그저 주일예배 열심히 드리고 저녁예배, 수요예배, 금요철야를 하면서 신앙을 키웠습니다.”
라 목사는 남부럽지 않은 경력의 소유자다. 영국 브리스톨대(M.A.)와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Ph.D.) 학위를 받고 개신대학원대학교 교수(신약학)를 거쳐 지금은 총신대와 명지대에서 강의하는 신학자이기도 하다. 한때 경기도 평촌의 한 대형교회에서 청년부를 맡아 정직운동을 주도했었다. 그 이전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다.
“신학교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이 교회 개척을 두려워했어요. 대부분 중대형교회 부목사나 청빙 받을 꿈만 꾸더군요. 그러면서
‘교수, 당신은 개척할 수 있나’ 묻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개척모델을 제시해 보고 싶은 생각에 카페를 시작했어요. 제가 커피를 좋아하거든요.”
-카페는 어떻게 차렸습니까.
“서울서 99㎡(30평)를 얻으려면 2억원이 드는데 카페는 보증금 포함, 7000만원이 들었습니다. 첫 6개월은 수지가 안 맞았어요. 지금은 수익이 생겨 장학금까지 만들었습니다. 카페 운영도 청년들이 직접 합니다. 4개의 차별된 공간은 만남의 장소입니다. 교회 건물이 아니어서 반감도 적고 청년들이 좋아합니다. 포털사이트 추천 카페로도 소문이 났고요.”
-주부 습진은 왜 걸리셨나요.
“목회자는 성도를 섬기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직접 하는 게 많아요. 교회 설거지도 하고 바리스타를 하면서 물도 많이 만지잖아요. 목사가 성도들의 짐을 나눠지고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신다고 생각해요. 성도들이 목사가 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으면 좋잖아요. 이런 기쁨을 목사 아니면 누가 경험하겠어요?”
꿈누리교회는 구역이나 순 같은 소그룹 모임을 ‘클러스터’로 부른다. 클러스터는 거주지나 나이 등을 초월해 무작위로 구성한 모임으로 교인 상호간 친교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확장 개념 대신 공동체를 나타내기 위해 차용했다. 주일에는 가족 구성원 모두 함께 예배를 드린다.
-솔직한 목회를 추구하는 것 같습니까.
“될 수 있으면 성도들에게 제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려 합니다. 제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데서 얻는 장점이 더 많습니다. 요즘 젊은 성도들은 투명한 걸 좋아합니다. 변하지 않는 분명한 가치를 보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듭니다. 투명한 교회 재정을 위해 예산 집행 100%를 공개하고 행사 계획은 철저하게 교인 간 합의에 의해 결정하는 것도 그 때문이죠.”
라 목사는 성도 150명이 되면 부교역자에게 카페를 차려줄 계획이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돕고 싶다. 사진을 좋아하는 그는 요즘 스튜디오 카페도 구상 중이다. 사진 찍고 차도 마시면서 삶에 지친 사람을 위로하고픈 마음에서다.
“목사란 부모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성도들이 잘못해도 믿어주고 기대를 갖는 사람. 그런 진정성이 결국 성도로 하여금 세상에서 힘 있게 살아가게 만드는 것 아닐까요?”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