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쿡 만나 부품 협력 강화 논의했다”

입력 2011-10-19 21:20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이재용 사장이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부품 분야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 사장은 애플과의 소송전도 확대할 방침이어서 애플을 상대로 한 투트랙 전략이 구사될 것으로 보인다.

이 사장은 19일 미국에서 열린 스티브 잡스 추도식에 참석한 뒤 귀국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추도식 다음날 팀 쿡 사무실에 찾아가 2∼3시간 동안 양사 간 좋은 관계 구축에 대해 얘기했다”면서 “부품 공급은 내년까지는 그대로 가고 2013∼14년은 어떻게 더 좋은 부품을 공급할지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내년 상반기 출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애플의 아이폰5에 삼성전자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인 ‘A6’가 탑재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사장은 소송과 관련해서는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고 소비자를 위해 페어플레이를 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품 분야 협력과는 별개로 소송은 계속 진행한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신종균 무선사업부 사장도 홍콩에서 열린 갤럭시 넥서스 발표 행사에서 “판매금지 가처분을 당해 보니 손실이 있고 우리도 그 방법을 쓰지 않을 수 없다”며 “삼성도 애플에 당한 만큼 같은 방법으로 제품과 고객을 보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애플 아이폰4S에 대해 한국에서도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소송전 확대도 시사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협력은 협력일 뿐 소송과는 다른 사안”이라며 “부품 협력으로 소송전에서 타협이 이뤄질 것이라는 해석은 잘못된 것이며 강경 대응 입장에 변함없다”고 설명했다.

소송과 관련한 삼성전자의 공세는 통신 분야 특허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다. 이날 미국에서도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국 새너제이 소재 캘리포니아 북부지구 연방법원은 18일(현지시간) 공정한 조건으로 특정 특허들의 사용을 허가하려는 애플의 의도를 삼성전자가 왜곡했다는 애플 측 주장을 기각했다. 또 삼성전자가 반독점 조항을 위배했다는 애플의 주장 일부를 기각해 달라는 삼성전자 측 요청도 받아들였다. 애플은 그동안 삼성전자가 통신기술에서 반독점 지위를 남용해 왔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 판결은 삼성전자의 주무기였던 ‘통신표준’과 관련된 것이어서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삼성전자의 3분기 스마트폰 판매량도 애플을 압도하며 세계 1위에 등극했다. 애플의 3분기 아이폰 판매량은 1707만대로 전분기(2034만대)에 비해 300만대 이상 줄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3분기 스마트폰 판매량은 2700만대가량으로 추산된다. 스마트폰 부진으로 인해 애플의 3분기 순이익은 66억2000만 달러(주당 7.05달러)를 기록, 전문가들이 예측한 주당 7.38달러를 밑돌았다. 애플의 실적이 예상치에 못 미친 것은 2004년 이후 처음이다.

이런 가운데 팀 쿡과의 회동을 계기로 그동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가려져 있던 이재용 사장의 리더십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사장은 이번 회동에서 애플이 삼성전자와의 소송을 이유로 대만 등의 업체로 부품 거래처를 바꿀 것이라는 우려를 해소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그동안 이 사장은 각종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자제해 왔지만 이번 애플 소송전에서 이 사장의 역할과 비중이 확연히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