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정부 구호 시위대에 교회 개방해 평화시위 이끈 영국 성공회 신부님
입력 2011-10-19 20:37
시위대 주일 교회 들이닥쳐 경찰과 대치 일촉즉발… “여기는 평화로운곳” 충돌막아
영국 성공회의 대표적 교회인 성 바울 성당이 ‘반 월가’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위기를 교회 개방으로 막았다.
지난 16일 주일 아침 런던의 성 바울 성공회 성당. 조용하던 교회 앞마당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수백 명의 시위대로 소란스러워졌다. 시위대는 얼굴에 마스크를 하거나 깃발을 든 채 ‘반(反) 정부’ ‘각성’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을 붙잡기 위해 수백 명의 경찰이 대치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성 바울 성당의 질레스 프레이저 주임신부가 나섰다. 신부는 시위대가 아닌 경찰을 향해 외쳤다. “시위대는 교회에 어떤 피해도 주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평소 주일 아침이나 다름없이 너무나 평화롭습니다.” 신부의 이 말에 결국 시위대가 아닌 경찰이 철수해야만 했다.
‘릴리전 뉴스 서비스’(RNS) 등 외신은 이 같은 16일 당시의 성 바울 성당의 표정을 전하며 “프레이저 신부의 신속한 조치 때문에 폭력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프레이저 신부는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시위에 경찰이 있어야 할 필요성을 못느꼈다”며 “평화 시위는 사람들의 권리로서 마땅히 보장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프레이저 신부는 평소에도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왔다.
이날 성 바울 성당은 평소 주일과 다름없이 평화롭게 예배를 드렸다. 그 시간 바깥에서는 수백 명의 시위대들이 반정부 구호를 외쳤지만 기물 파괴나 난동 같은 어떤 불법행위도 발생하지 않았다. 시위대는 성당 측의 배려로 성당 앞마당에 텐트를 친 채 계속해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반면 지난 주말 로마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는 경찰과 시위대간 충돌로 부상자가 속출했다. 은행이나 가게의 집기, 유리창이 부서지기도 했다.
시위대 중의 한 사람인 영어 교사는 “국민의, 국민을 위한 정부는 국민 다수의 의견에 기초해야 한다. 소수를 대변하는 정부는 더 이상 정부가 아니다”고 분개했다. 봉사기관에서 일하는 한 시위대원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이 나라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며 “이번 경제위기는 도덕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미국의 ‘반 월가’ 시위에 자극을 받은 영국 시위대는 ‘런던 증권가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최근 며칠간 격렬한 시위를 벌여왔다. 시위대는 올 크리스마스 때까지 시위를 계속 벌일 예정이다.
성 바울 성당은 17세기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이 세운 돔 형식의 성당으로 런던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1981년 다이애나 공주가 여기서 결혼예배를 드렸다. 이번에 시위대가 들이닥친 것은 성 바울 성당이 금융가 옆에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