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자살자 유가족에도 관심을
입력 2011-10-19 18:02
우리나라는 자살을 개인적인 죽음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자살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는 사회적인 여파를 남긴다. 한 사람의 갑작스런 자살로 인해 남겨진 사람들은 큰 충격과 혼란을 경험한다. 특히 자살자의 가족은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사회적 낙인으로 인한 수치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에 대한 무력감과 절망감 같은 정서의 혼돈 속에 빠지기 쉽다.
그들은 평생 마음속에서 자살자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자살자와 함께 살아야 하는 고통을 겪는다. 그러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이에게 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그들 중 일부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다. 고(故) 최진실, 진영 남매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자살자 유가족은 어느 누구보다 정서적 보살핌과 치료가 절실한 ‘자살 고위험군’이다. 전문가들은 자살자 유가족이 일반적으로 가족, 친지뿐 아니라 친구, 이웃, 동료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본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살자 유가족의 기분장애 발생률은 4배 이상, 스트레스와 연관된 신체형 장애는 2.7배, 진료비 청구 건수는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최근 통계청 사망원인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우리나라 자살 사망자는 1만5566명이었고, 하루 4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구 10만명당 자살자는 28.1명(2009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평균 11.3명) 가운데 1위라는 불명예를 이어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한 명이 자살하면 그 영향을 받는 사람은 5∼10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국내에 한 해에 발생하는 자살자 유가족이 7만∼15만명 정도 된다는 얘기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이들이 사실상 방치돼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일본 릿쿄대학 대학원에서 자살자 유가족 관련 연구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박혜선(34)씨를 만났다. 박씨는 올해 4월부터 국내 민간 자살예방단체인 한국생명의전화에서 자신의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형 자살자 유가족 지원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의 실무를 맡고 있다. 그에 따르면 같은 동양권인 일본도 우리와 정서가 비슷했지만 10년 앞서 자살을 개인 일이 아니라 사회 문제로 인식했고, 거기에 자살자 유가족이 큰 역할을 했다.
일본에는 자살자 유가족 자조모임이 100여개에 이른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들을 적극 지원하고 자살예방에 나서 큰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자살자 유가족 지원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서울과 인천, 경기도 3곳의 정신보건센터와 생명의전화(서울, 대전, 부산)만이 유가족이 모여 마음을 터놓는 자조모임을 운영하는 정도다. 유가족 자조 모임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가슴 속 얘기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
지난 3월 자살예방 및 생명문화존중을 위한 법률이 국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연내에 3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중앙자살예방센터 설립과 정신보건센터 설치 확대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그동안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자살자 유가족 관련 대책도 충분히 검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가족이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여러 상담 서비스를 일정기간 무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지역사회가 이들의 절박한 사정을 구체적으로 도울 수 있는 자원과 지지망을 구축해야 한다. 자살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도착하는 경찰과 119구급대원 등이 유가족 대응 정보를 담은 핸드북을 제공할 수 있도록 부처 간 협조도 필요하다. 자살에 대한 ‘사회적 낙인’ 해소를 위한 계몽과 홍보 활동도 절실하다.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