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겉과 속] “후원자 고용주까지 밝혀 ‘후원금 쪼개기’ 검증해야”
입력 2011-10-19 21:25
국민일보는 ‘정치자금 겉과 속’ 시리즈를 마감하면서 정치학자와 현역 정치인의 의견을 들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투명성 확보를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며 정치권을 질타했고, 백원우 민주당 의원은 “부끄러웠다”고 자성의 뜻을 밝혔다. 대안에 대해서는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소액 다수 후원을 더 활성화하면서 정치자금의 수입·지출 내역을 완전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편집자 주
정치자금제도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2004년 정자법 개정 이끈 김민전 경희대 교수
“국회의원들의 정치자금 씀씀이가 이렇게 전모를 드러낸 적은 없었다. 의원 평가에 중요한 근거자료가 나온 것이다. 정치자금의 지출내역을 완전 공개하도록 제도화해야 할 시점을 맞았다.”
김민전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9일 본보와 인터뷰를 갖고 ‘정치자금 겉과 속’ 시리즈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김 교수는 8년 전 시민단체 대표, 학자, 언론인 등 민간전문가 11인으로 구성된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정개협) 위원으로 참여해 이듬해인 2004년 법인·단체의 정치자금 기부금지 등을 골자로 한 정치자금법 개정을 이끌어냈다.
김 교수는 19일 “국민일보 기사를 접한 후 국회의원들의 정치자금 사용에 대한 국민들의 문제의식이 커졌다”며 “의원이 하는 건 뭐든 정치활동이고, 정치자금으로 쓸 수 있는 것처럼 인식돼 왔었는데 이런 정보가 한 번 공개되고 나면 명확한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유권자의 알권리 충족 차원에서 정치자금 지출내역 공개의 의미를 짚었다.
“국회의원은 유권자의 대리인이다. 대리인의 의정활동에 대해 올바른 평가를 하려면 정치행위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 국회 안건별 표결기록과 정치자금 수입·지출내역 등 3가지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경우 IBM 직원들의 특정 정치인에 대한 기부금 통계가 나올 정도로 투명성에 있어 철저하다. 지출도 의원 윤리강령은 물론 의회 윤리국에 하나하나 물어보고 쓸 정도로 엄격한 것을 감안해 우리 기준도 보다 명확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정치권의 부패 회귀본능도 꼬집었다. “2004년 고액후원금 신상공개 기준으로 정했던 연간 120만원 이상 기부자 요건을 여론의 감시가 덜해진 틈을 타 2007년 연간 300만원 이상으로 슬그머니 후퇴시켰다.”
국회의원들의 잘못된 지출관행에 대한 처방으로는 투명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보완을 제시했다. 후원금 수입내역과 지출내역의 인터넷 공개 등 과거 정개협이 제안했으나 정치권이 받아들이지 않았던 제도들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수입 측면에선 정치후원금을 낸 사람의 신원은 물론 고용주까지 명시해야 한다. 주부는 남편의 직장을 명시하도록 해 직원을 동원한 후원금 ‘쪼개기’가 없는지 검증해야 한다. 지출내역도 1년에 4번 이상 온라인으로 공개하고 유권자가 자신이 후원하는 의원과 지지하는 의원, 혹은 반대하는 의원이 어디에 지출하는지 알 수 있도록 보장해 줘야 한다.”
투명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개선에는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일정 수준의 합의란 게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2003년에도 정치적 합의의 결과물로 고액후원자 신분공개 규정을 모호하게 만들었더니 지금까지 정치자금 수입 투명성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오히려 누가 얼마나 냈는지, 어디에 얼마나 썼는지 투명해진다면 정치자금을 인위적으로 막고 있는 부분을 풀어줄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것이라 본다.”
정자법개정안 대표 발의 백원우 민주당 의원
국민일보의 ‘정치자금 겉과 속’ 시리즈 보도를 통해 일부 의원이 정치자금을 사적 용도로 사용한 사례를 보고 안타까웠다. 사적 용도로 사용된 정치자금은 반납되는 게 맞다고 본다.”
민주당 백원우(경기 시흥갑) 의원은 19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으로서 부끄러웠다”고 고백했다.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했다. 뚜렷한 기준 없이 이뤄지고 있는 정치자금 지출의 문제점에 대한 자기반성이다.
백 의원은 국회에서 정치 분야 관련 법 논의를 전담하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위원이다. 아울러 지난봄 많은 논란을 낳았던 정치자금법 개정안의 대표 발의자이기도 하다.
그는 정치자금의 사용처를 일정 정도 제한하자는 제안에 대해 “사안마다 일일이 해당된다, 안 된다를 따지는 것은 너무 복잡해진다”며 “법으로 사용처를 규정하기는 어렵고 사회적 합의로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흥음식점에서는 아예 지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사용처를 제한하고 있는 공공기관의 법인카드 기준이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 의원은 “국민들이 모아준 정치자금은 공익적 용도로 사용한다는 스스로의 자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애로사항도 털어놨다. 실제로 정치자금을 사용하다 보면 공적 용도인지 사적 용도인지 구분이 애매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또 공적 지출임에도 사적 용도로 의심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는 “주말과 휴일에 주로 지역구 활동을 하게 되는데 지역에서 식사비 등을 지출하게 될 경우 걱정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활동을 위한 지출이지만 휴일에 자택 근처에서 식사비를 계산하다 보니 사적 지출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의 전면 공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어디서부터 정치자금이 들어와 그 돈이 어디에 사용됐는지를 모두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데 찬성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전제를 뒀다. 백 의원은 “정치자금의 출처와 사용처를 제대로 공개하기 위해서는 정치인에 대한 소액 다수 후원의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고 했다. 소액 다수의 후원금 모금이 활성화되어야 출처 공개의 명분이 생기고 소수의 거대 자본이 정치를 마음대로 주무르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는 “우리 정치에는 아직 금권주의적 요소가 남아 있다”며 “정치인들이 소수의 거대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정치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해줘야 정치영역이 공익적 가치를 실현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가 국회에서 공론화되기까지는 꽤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개특위에는 재외선거 제도나 석패율제, 지구당 부활 문제, 선거구 획정 문제 등 의원들의 정치 생명을 좌우할 만한 현안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백 의원은 “정개특위가 가동되고 있지만 아직은 정치자금법 개정 얘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탐사기획팀 indepth@kmib.co.kr
정승훈 차장 shjung@kmib.co.kr 김지방 차장 fattykim@kmib.co.kr 정동권 기자 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