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 겉과 속-(10·끝) 변화 필요한 정치자금법, 대안은 무엇인가] 후원금·지출내역 전면 공개해야

입력 2011-10-19 21:24


골프, 동문모임, 대형 승용차, 미용실, 사우나, 술집, 가족 숙소….

국회의원들의 무분별한 정치자금 지출 행태가 국민일보의 탐사보도로 처음 드러나면서 정치권의 반성과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민단체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심지어 국회입법조사처까지 고비용 구조와 막무가내 식 지출 관행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정치자금법 등 관련 법의 개정을 요구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하지만 당사자인 국회의원들은 묵묵부답이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전체회의가 열렸다. 예정시간보다 50분 늦게 열린 회의는 불과 19분 만에 끝났다. 재외국민의 우편투표 허용 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인 것이 전부였다. 정개특위는 연말까지만 활동한다. 특위 관계자는 “이날까지 모두 8차례 전체회의가 열렸지만 정치자금법·공직선거법·정당법 개정 논의는 아직 시작도 못했다”며 “연말까지 시간만 끌다 결국 졸속 처리해온 전례가 이번에도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고 한숨을 쉬었다.

정치권을 바라보는 이들도 답답하다. 전국 50개 시민단체 연합체인 유권자자유네트워크(유자넷)는 이날 선관위에 공직선거법 등 정치 관련 법 개정을 촉구하는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유자넷은 “유권자들의 정치 무관심과 낮은 투표율을 탓하기에 앞서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와 관행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조속한 법 개정을 요구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이 정치 개혁 입법을 해주길 바라는 것은 고양이가 스스로 목에 방울 달기를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변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이 정치권을 압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관위 송봉섭 의정지원과장도 이날 유자넷이 주최한 선거 관련 세미나에서 “선관위에서도 5차례에 걸쳐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지만 아직 국회에서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투명성 높여야 정치 신뢰 회복=정치자금 제도 개선은 정치 개혁의 전제조건이다. 입법조사처는 국회에 “정치자금 정보를 상세하게 공개해 정치자금을 누구에게 받아서 어디에 썼는지를, 유권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그래야 정치자금과 관련한 부정을 막을 수 있고 소액 후원 활성화도 가능하다”고 제안해놓고 있다. 456개 시민단체 연합체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도 같은 내용을 제안하고 있고, 선관위도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표 참조>.

정치자금의 출처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는 연간 300만원(대통령 후보는 500만원)을 넘게 후원한 사람의 인적사항만 공개하고 있다. 미국(200달러·약 25만원 이상 기부자 공개), 일본(1만엔·약 15만원 이상)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높다. 당비는 더 문제다. 아무리 많이 내도 공개하지 않는다. 시민단체들은 “배우자나 회사 직원을 내세워 쪼개기 후원을 하는 관행을 막으려면 후원금 공개 기준을 낮추고 후원자의 소속업체·배우자 정보도 신고 받아야 한다”며 “당비 후원 내역도 공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의회 윤리규정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 미국 의회 윤리규정은 무려 456쪽에 이른다. 선물·해외출장비부터 휴대전화와 인터넷·복사기 용지까지 규제한다. 한국 국회의 윤리규정은 국회 윤리특위 홈페이지 1개면에 소개한 것이 전부다. 윤리강령 5개항과 15개의 실천규범이 전부다. 이것도 1993년 이후 손대지 않고 있다.

돈 많이 드는 정치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선 시민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고 소액 후원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선관위는 △인터넷·소셜네트워크를 이용한 선거운동 상시 허용 △전자투표제 도입 △통합선거인명부 작성 △방송토론 활성화 등을 정개특위에 제안했다. 시민단체연대회의는 선관위 의견에 더해 △선거연령 만 18세로 낮추기 △오후 9시까지 투표 △사전투표제 등 부재자투표 확대 △정당 설립요건 완화와 후보자 기탁금 인하를 주장하고 있다. 시민단체연대회의 관계자는 “10·26 재보궐 선거가 끝나면 정치관계법 개정 여론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며 “연말까지 입법 청원과 정치개혁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탐사기획팀 indepth@kmib.co.kr

정승훈 차장 shjung@kmib.co.kr 김지방 차장 fattykim@kmib.co.kr 정동권 기자 danch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