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의 사막의 구도자들] 말라비틀어진 밥이라도 달게 먹자
입력 2011-10-19 17:54
청년 파코미오스가 팔라몬이란 스승을 모시고 이집트의 테바이드에 살고 있었다. 어느 부활절 아침에 파코미오스는 스승을 위해 특별한 음식을 준비했다. 특식이라야 평소 먹던 채소에 올리브기름을 좀 뿌린 정도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스승 팔라몬은 올리브기름이 들어간 샐러드를 보더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겪으셨는데 이런 음식으로 어찌 혀끝에 쾌감을 주겠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팔라몬은 제자 파코미오스에게 물을 가져오라고 했고, 채소 그릇에 물을 부어 둥둥 뜨는 기름을 따라 버린 뒤 한줌 재를 휙 뿌리고서야 비로소 먹기 시작했다. 올리브기름을 버린 것도 성에 안 차 재를 뿌린 것은 채소의 맛을 아예 없애 버리기 위함이었다.
필자는 기독교 영성사를 가르치지만 수업시간에 신학생들에게 이 일화를 이야기해줄 때면 난감한 처지에 빠지곤 한다. 팔라몬의 입장을 마냥 부정도 긍정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팔라몬의 태도에는 지나치게 극단주의적이라고 무조건 부정하기만은 어려운 진지한 영성이 분명 존재한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의 고통을 생각하며 미각의 욕구를 괘념치도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체험하겠다는 각오인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입에 단 음식을 마다하지 않는 나에게 팔라몬의 경지는 너무나 요원해 그의 입장을 수긍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온갖 양념’으로 새콤달콤 고소한 묘미를 좇는 음식문화에서는 재를 뿌려 음식 맛을 없애는 사막 기독교인의 행동이 이상한 얘기로만 들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라몬에 얽힌 일화를 통해 한 가지 교훈을 얻고자 한다. 그것은 음식에 대한 태도와 기독교적 삶이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사막에 살던 기독교인들은 음식에 대한 태도와 기독교 신앙 간에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역설한 자들이었다. ‘사막교부들의 금언집’ 중 많은 금언이 음식에 대한 신앙인의 태도를 다룬다. 식탁 앞에서 유창하게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난 뒤 찬을 놓고 불평스레 왈가왈부하는 것은 음식을 주신 하나님 앞에서는 어리석은 짓이요, 요리를 한 사람에 대해선 무시하는 태도가 된다. 말라비틀어진 밥이라도 달게 씹어 먹으며 감사하고, 김칫국물이라도 있으면 진수성찬인 줄 알고 감사해야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려면 그 옛날 팔라몬이 먹었던 바, 물먹은 채소에 한줌 재 뿌린 것보다야 그 맛이 덜할 리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