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환의 삶과 신앙] 남자들이여 고개를 들라!
입력 2011-10-19 17:53
우리 시대에 중년기 아버지들의 모습을 ‘고개 숙인 남자’로 표현하는 말들이 많이 회자된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 왔지만 언제나 구조조정의 1순위 대상자가 되어 열심히 일하면서도 괜스레 주변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집안에서도 아내와 자녀들에게 인정받고 존경받지 못하는 초라한 모습임을 발견하곤 한다. 사회에서는 활동이 왕성한 생산적인 젊은 세대들에게 추월당하지 않으려고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쫓기는 신세가 되어 있고, 가정에서는 연로하신 부모 세대를 봉양하며 아직은 독립하지 못한 자녀들을 보살펴야 하는 이중의 책임 앞에 샌드위치가 된 딱한 세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중년기 남성들은 삶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을까? 통계에 의하면 술과 담배로, 낮잠이나 TV 시청으로, 때로는 가까운 가족들에게 신경질이나 고함 등의 화풀이로 풀어버리는 것이 가장 일반화된 중년기 남성들의 시간 보내기라는 것이다. 그나마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휴일이면 골프에 빠져 가족과 아내를 주말 고아나 주말 과부로 만들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러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남성들을 가족들과 더욱 고립시키고 점점 남성의 입지가 좁아지게 만드는 함정이 되기도 한다.
오늘의 한국 중년 남성들에게는 이러한 스스로 자초하는 고립의 함정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대각성 운동이 절실히 필요하다. 중년기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쫓기는 시기이고 위기의 시기가 되지만 어떠한 사람들에게는 성숙의 시기이며 인생의 황금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갈림길은 우리의 선택에 의해 나뉜다. 성숙한 중년 남성운동을 위해 몇 가지 제안하고 싶다.
첫째, 자신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과거의 익숙했던 남성상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새로운 삶의 계획표를 만들어보자. 우리들이 익숙하게 들어 왔던 남자란 이러 저러해야 한다는, 남이 짜준 남성 이미지와 삶의 계획표에서 벗어나고 주변에서 강조하는 강요된 전사의 역할에서 벗어나보자. 그리고 진정한 내면의 소리, 자신에게 들려오는 삶의 북소리를 듣는 기회를 가져보자. 일과 성취를 위해 애쓰며 시지푸스 신화의 주인공처럼 살아 왔던 자신 안의 남성강박을 잠시 내려놓고 우리 안에 깃든 거룩성, 삶의 통전성의 근원이 되는 영성 발견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보자. 세계의 신화와 민담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 중 하나는 고대의 남성들은 들과 산에서 애쓰는 시간만큼 신을 찾고 자신을 찾고자 애쓰는 시간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삶을 완성하고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 안에 있는 숨겨진 성스러운 무언가를 찾아가는 내적 여행을 떠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한다.
둘째, 가족을 포함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과의 친밀감을 회복하고 다지기 위하여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여보자. 그동안 ‘사냥꾼’과 ‘식량배급자’로서의 의무에만 충실한 것이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식이었고 이 의무감을 충실히 표현하는 동안 가족들은 정이 있고 활력이 넘쳤던 아버지, 인간적인 아버지를 잃어버렸다. 아버지의 상실은 가족으로부터 소중한 무엇인가를 빼앗아간다. 이러한 상실감의 슬픔은 세대 간 단절로 이어져 서로에게 짙은 상처를 남기며 아버지인 남성들의 외로움을 낳고 자신들이 만들어온 집안의 동굴 속인 ‘아버지의 방’으로 더욱 깊이 도피하게 되는 악순환을 낳는다. 이제는 이 동굴에서 빠져나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놀이를 통한 소통’의 방식으로 가까운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해보자.
셋째, 자신의 고민과 꿈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같은 세대 남성 그룹들의 모임에 적극 참여하며 자신의 삶을 나누는 용기를 가져보자. 남성들은 지나친 경쟁심에서 자신과 함께 친구를 잃는다. 그러나 남성 발달의 필수 요소 중 하나는 멘토와 친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다른 남성들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삶의 경험을 서로 이야기할 수 있고, 삶의 무거운 책임감과 상처 입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다른 남성 그룹을 발견하는 일은 남성의 성숙과 발달을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남성들의 건강한 모임들을 통해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다지는 우리 주변의 아버지가 점점 늘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고개 숙인 남성들이여, 이제 고개를 들라!
■ 정석환 교수는 이야기심리학을 통해 보는 성인 발달과 목회상담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현재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장 겸 연합신학대학원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