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소반다듬이’ 펴낸 권오운씨 “바른 문장에서 우러나는 감칠맛 있어야 좋은 소설”

입력 2011-10-18 17:47


권오운(69) 전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문단에서 ‘우리말 달인’이자 ‘우리말 지킴이’로 통한다. 그가 문예지 지면을 통해 우리 소설 속 잘못된 문장과 단어를 바로잡는 코너를 연재하면, 소설가들은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된다. 박완서, 이청준, 이문열 등 이미 문장이라면 호가 난 작가에서부터 김종광, 김애란, 서유미 등 젊은 작가에 이르기까지 그의 잣대를 피해간 소설가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말 소반다듬이’(문학수첩)는 작가들이 결딴 낸 우리 문장과 단어를 바로잡는데 평생을 바쳐온 그의 여섯 번째 책이다. 우선, 소반 위에 쌀이나 콩 따위의 곡식을 한 겹으로 펴놓고 뉘나 모래 따위의 잡것을 고르는 일을 뜻하는 ‘소반다듬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우리 소설 속 잘못된 문장과 단어를 잡티 골라내듯 잡아낸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김훈, 신경숙, 은희경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김훈이 ‘남한산성’에서 쓴 ‘큰 놋주발 속의 돼지 염통은 싱싱해 보였다’라는 문장을 들어 이렇게 지적한다. “‘놋주발’은 무엇이고 ‘놋사발’은 또 무엇인가? 놋쇠로 만든 밥그릇이 ‘주발’이고, 사기로 만든 국그릇이나 밥그릇이 ‘사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놋쇠로 만든’ 그릇 앞에 다시 ‘놋(놋쇠)’을 붙이면 무슨 꼴이 되며 사기그릇 앞에 ‘놋(놋쇠)’을 끌어다 붙이면 또한 무슨 괘꽝스러운 꼬락서니인가.”(32쪽)

그는 또 “은희경은 ‘사기주발’(‘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이라고 하여 한 술 더 뜨고 있다. ‘사기로 만든 놋그릇’이라니! 공지영도 ‘놋주발’(‘봉순이 언니’)이고, 김형경은 ‘놋쇠화로’(‘성에’)란다. 신경숙의 장편 ‘엄마를 부탁해’에는 ‘양은함지’(‘함지’는 나무 재질)가 나오는가 하면, 하성란의 장편 ‘식사의 즐거움’에는 ‘쇠사발’(‘사발’은 사기 재질)이 튀어나오기도 한다”라고 꼬집고 있다.

아울러 일본어가 우리 소설 속에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하고 있는 현상도 개탄한다. “이제는 거의 외래어가 되어버린 ‘우동’이나 ‘오뎅’마저 가능하면 ‘가락국수’나 ‘꼬치’로 순화해 쓰자는 판에 그 누구보다도 말을 다듬어 써야 할 작가들이 마치 귀먹은 중 마 캐듯 눈도 깜짝 안 한다. 예컨대 일본어 세대인 박완서가 ‘다지기’를 ‘다대기’(장편 ‘오래된 농담’)로 쓰니까 문단 막내 김애란도 옳다구나 싶어 ‘다대기’(단편 ‘칼자국’)라고 떳떳이 쓰고 있다.”(48쪽)

그는 ‘바른 문장에서 우러나는 감칠맛’을 좋은 소설의 조건으로 꼽았다. 그러나 요즘 우리 소설에서는 입맛 다셔지는 바른 문장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어휘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작가들이 자다가 봉창 두드리듯 아무 단어나 주워섬기고, 그로 인해 메마른 낱말들만 제각기 싸돌아다니게 된 탓이라는 것이다.

그는 “국어사전에도 없는 희한한 말들, 잘못된 외래어, 적재적소에 쓰이지 않은 엉뚱한 단어들은 우리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킨다”며 “‘까짓 문법 나부랭이 가지고 뭐 그리 따따부따냐’하는 축들에게 묻노니, 앞의 사례들이 ‘문법 나부랭이’인가?”라고 되물으면서 슬그머니 사족을 붙인다. “본의와는 다르게 콩 났네 팥 났네 하며 닦달을 해댄 작가들에게 많이 미안하다. 뜨거워서 그렇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