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박원순의 책탐

입력 2011-10-18 17:44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박원순 후보는 책탐(冊貪)이 유난스럽다. 그의 홈페이지 ‘원순 닷컴’에 들어가 보면 책에 얽힌 사연을 쉽게 만날 수 있다. 1994년에 쓴 ‘고서점 서유기’는 런던과 보스턴에 머무는 동안의 책방 및 도서관 순례기다. 스스로 “무슨 귀신이 들렸는지 별것도 아닌 것을 왜 그토록 안달이 나 모으고자 했는지 이상할 정도였다”고 말한다.

일화도 많다. 하버드대 도서관에서는 하루에 몇 십권씩 복사를 해대니 학교 측에서 아예 2000장부터는 장당 2센트씩 내도록 규정을 바꿀 정도였다. 책에서 나는 복사열과 냄새가 얼마나 심했던지 부인이 쓰러진 적도 있다고 한다. ‘책만 보는 바보’라는 뜻의 옛 간서치(看書痴)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는 읽기만 하는 독서가가 아니라 쓰는 필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그의 이름이 들어간 저서가 47권에 이른다. 1986년 첫번째 책 ‘저작권법’을 출간한 이래 1995년부터 해마다 한 권꼴로 내다가 올해에는 ‘세상을 바꾸는 천개의 직업’ ‘박원순의 아름다운 가치사전’ 등 무려 8권을 내기에 이른다. 읽은 만큼 쓰는지, 대단한 에너지가 아닐 수 없다.

방배동 자택에는 책이 가득하다. ‘서울 강남의 60평대 대형 아파트’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공개한 사진을 보면 서재 수준을 넘어선다. 드넓은 거실에 바닥부터 천장까지 높은 서가에는 1만여권의 장서가 빼곡하게 꽂혀있다. 모르는 사람은 묻는다. 그걸 언제 다 읽느냐고. 아는 사람은 안다. 읽지 않아도 책을 바라만 봐도 얼마나 흐뭇한지를.

그러나 이 서가를 보는 독자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아름다운 가게’를 열어 나눔문화를 확산하는 시민운동가의 지향점과 다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박 후보의 공약 가운데 중요한 것이 마을마다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니, 방대한 장서를 끌어안고 있기보다 기증하는 게 나눔의 실천이 아닐까. 여럿이 책을 나누어 보는 도서관이야말로 가장 오래된 아름다운 가게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토머스 제퍼슨이 펼친 ‘등잔론’은 공공도서관 제도를 낳았다. “누가 내 등잔의 심지에서 불을 붙여가도 내 등잔의 불은 여전히 빛난다”며 도서관을 통한 지식의 공유가 문화 발전을 촉진한다고 말했다. 마침 옛 서울시 청사가 도서관으로 리모델링중이다. 서울시장이 되든, 안 되든 소중한 인연 아닌가. 박 후보는 “돈의 영생을 믿는다”고 했는데, 책이야말로 영생의 대상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