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뿐인데 뻔하게 할수있나요… 신세대 주례없는 결혼식 확산
입력 2011-10-18 17:35
결혼식이 많은 요즘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으니 식 올리기 안성맞춤이다. 주말마다 1, 2건씩 참석하는 결혼식장에서 “어! 이건 또 뭐야?” 놀라는 이들이 적지 않다. 비슷비슷했던 결혼식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장선생님 훈화처럼 뜻은 좋지만 지루하던 주례사 대신 양가 부모의 진솔한 말씀이 신랑신부와 하객들의 가슴을 울린다. 그런가 하면 결혼식 내내 조신하게 서 있기만 하던 신랑신부가 목청껏 자축 노래를 부르거나 아예 덩실덩실 춤을 춰 결혼식을 즐겁게 연출하고 있다. 또 결혼식 마무리행사였던 폐백을 아예 생략하기도 한다.
결혼 1개월차 김문원(31)·손혜림(30) 부부의 결혼식 앨범에선 주례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성혼선언은 신랑 아버지 김홍만(61)씨가 했고, 주례사는 신부 아버지 손학(57)씨가 신랑신부에게 당부하는 말과 하객들에게 드리는 인사말로 갈음했다. 주례 없는 결혼식을 권한 것은 신부 아버지. 문원씨는 “마땅한 주례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잘 됐다 싶었다”며 “처음에는 아버지가 부담스러워 하셨는데, 준비하시면서 긍정적으로 바뀌었고, 결혼식이 끝난 다음에는 흡족해 하셨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는 “식순을 정하고, 서로에게 주는 글을 마련하고, 아버님들의 연습을 도우면서 결혼의 의미를 깊이 새겼고, 또 식이 진행되는 동안 진솔한 마음을 나눌 수 있어 보통 결혼식보다 훨씬 좋았다”고 입을 모았다. 혜림씨는 폐백을 시댁 어른뿐만 아니라 친정부모에게도 드렸다.
올해 7월 16일 식을 올린 김종술(34)·김지혜(30) 부부도 판에 박힌 결혼식이 싫어 주례 없는 결혼식장에 동시 입장을 했다. “아버지 손에 이끌려 들어가 신랑에게 인계되는 것이 싫었다”는 지혜씨는 “아버지가 서운해 하셨지만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한 성혼선언을 해주실 것을 부탁하자 승낙했다”고 귀띔했다.
신랑 아버지가 내빈에게 감사 말씀을 했고, 양가 어머니들이 신랑신부에게 당부 말씀을 했다. 또 신랑신부의 선후배가 나와 축하 메시지를 낭독했고 이에 대한 답례로 신랑신부가 시크릿의 ‘별빛달빛’ 등에 맞춰 춤을 추었다. 폐백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양가 어른께 허락을 받고 아예 생략했다. ‘웨딩 PD’를 꿈꾸는 지혜씨는 “하객들이 ‘결혼식 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은 처음이었다’며 즐거워하더라”고 자랑했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 대세는 아니지만 점차 늘고 있다. 김혜경웨딩 대표 김혜경씨는 “10여년 전에는 국제결혼이나 재혼커플들이 주로 주례 없는 결혼식을 했으나 최근에는 초혼커플들도 많이 하고 있다”면서 10쌍 중 1쌍 정도가 주례 없는 결혼식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양식으로 진행되는 결혼식에서 유일하게 우리 전통혼례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이 폐백이다. 전통혼례의 구고례(舅姑禮)에 해당되는 것으로 신부가 신랑 집안의 새로운 성원이 됐음을 조상과 친척, 그리고 이웃에 알리는 의식이다.
와이즈웨딩 이연주 팀장은 “폐백을 하지 않는 커플들이 늘어나면서 예약 때 폐백실 이용이 선택사항이 된 예식장이 많고, 양가가 함께 폐백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신부 측과 신랑 어른들만 받는다는 원칙을 내세우는 신랑 측이 티격태격 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려준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에 따르면 신식결혼은 1890년대에 생긴 ‘예배당결혼’이 처음으로, 1930년대에 계명구락부를 중심으로 오늘날의 예식장에서 행하는 결혼식이 보급됐다. 이후 결혼식은 최근까지도 그 형태를 유지해 왔다. 주례를 지인이 아닌 전문가에게 맡긴다거나 여성이 한다고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신랑에게 ‘만세 삼창’을 시키거나 신랑신부 키스신을 연출해 하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그럼에도 큰 틀은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결혼식 식순이 아예 바뀌고 있는 것이다.
듀오웨드 김효진 실장은 “결혼 준비를 신랑신부가 직접 하는 경우가 늘면서 결혼식에 취향과 개성을 한껏 반영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남들과 다른 결혼식을 올리는 이들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제 결혼식은 틀에 박힌 엄숙한 행사가 아니라 평생 기억할만한 추억과 이벤트로 발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세태 변화가 반영된 결과로 보고 있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함인희 교수는 “결혼은 부모를 중심으로 가족과 가족이 결합하는 신성한 가족의례였으나 최근에는 신랑신부 두 사람이 결합해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데 초점이 맞춰지면서 이벤트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폐백의 변화에 대해선 “신부가 그 집 사람이 됐다는 인사 차원에서 시댁식구들에게 드리는 폐백을 신부 부모들이 같이 받거나 아예 생략하는 것은 부계혈연가족제도가 양계제도로 옮겨가는 과도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김혜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