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진희] 21세기 변화, 다시 월街에서 시작될까?
입력 2011-10-18 17:38
지난달 17일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이 한 달을 맞았다. 처음 캐나다의 반(反)소비주의 잡지 애드버스트 광고에 자극을 받은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월스트리트 한복판 ‘자유 광장’에 텐트를 치고 노숙할 때만 해도 주요 매체는 물론 진보단체들조차 이들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평균 연령 20대 후반, 대부분 대학교육을 받은 백인 ‘점거자들’의 요구가 분명치 않다거나, 빈민과 소수민족의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한 문화적 히피, 무정부주의자들이라고 간주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99%’라는 슬로건을 앞세운 이 젊은이들이 체포와 구금의 위협,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숙을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 주장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났고, 월스트리트 점거를 모방한 운동이 미국 전역으로,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금융시스템의 왜곡과 민주주의의 근본원칙을 위협하는 주범으로 지목되었던 월스트리트가 결국 변화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권력체계 근간 뒤흔든 시위
사실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은 전 지구적 저항운동의 일부다. 이집트 타하리 광장의 봄에서 마드리드와 런던의 여름을 거쳐 확산된 민주주의 열망이 뉴욕의 가을에 도달한 뒤 다시 전 세계로 확산된 것이다. 지역적 차이가 있긴 하지만 빈부격차와 실업, 민주주의가 공통의 화두로 떠오른 이 전 지구적 운동은 성장주의에 사로잡힌 기존 체제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나타내는 징조다. 타하리 광장과 마드리드에서 그랬듯, 월스트리트의 젊은이들은 공공선에 대한 시각을 상실한 권력체계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참여, 공유, 개방이라는 웹 2.0세대가 주도한 월스트리트 점거는 이전 세대들의 운동과 다르다. 소셜 네트워크로 연결된 시위조직은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통해 운동을 조직하고 참여를 독려한다. 그들은 평화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을 통해 타인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뉴욕의 공공장소에서 스피커 사용이 금지되자 공명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 오히려 상대의 정서를 깊이 공감하게 만들기도 했다. 의도적으로 느슨한 이 운동에는 지도자도, 지도자 회의도 없다.
그럼에도 그들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99%!’라는 것, “월스트리트는 구제받았으나 메인스트리트는 버려졌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규칙을 정하고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1%의 경제적 특권층에 대한 비판일 뿐 아니라 현재의 경제구조가 지닌 문제를 시정하지 못하는 오바마 정권, 미국 정치의 현주소, 곧 금권정치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월스트리트 점거는 누구나 알지만 말하기 쉽지 않았던 이야기를 발설하고 있다. 기업 프렌들리 정책이 모두를 잘 살게 해 줄 것이라는 신화, 파이가 커지면 국민의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신화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주장이 자신들의 처지와 직결되었다고 공감하는 사람들, 더 이상 기존 경제·정치 엘리트들에게만 자신들의 운명을 내맡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점거운동은 빠른 시간 내에 급격히 확산되었다. 변화의 열망이 비등점에 도달한 것이다.
변화의 열망 비등점 도달해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1929년의 대공황이 19세기적 시스템에 근본적 문제를 제기했듯, 오늘날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점거운동은 21세기를 지배하는 지난 세기의 원칙에 의문을 제기한다. 대공황을 겪으며 살아남은 정치·경제가 20세기를 지배했다면,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은 21세기적 가치를 향한 새로운 거버넌스를 요구한다. 마크 트웨인이 일찍이 말했다. “역사는 반복하지 않는다. 단지 음율(rhyme)이 반복될 뿐이다”라고.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자발적 시민운동이 미국과 세계를 변화시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진희 경희사이버대 미국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