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cupy Wall St.’… 反월가 시위,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입력 2011-10-18 23:03

한 달을 넘어선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 시위는 미국의 구조적 모순을 한꺼번에 분출시키는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달 17일 처음 시작될 때만 해도 이 시위는 청년 백수나 실직자, 또는 경제적 빈곤으로 일부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화풀이 정도로만 치부됐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시위 규모는 커지고, 동조 세력이 늘어나면서 미국의 정치·사회학자들은 주목하기 시작했다. 일부 학자들은 ‘분노의 시대’ ‘불공정’ ‘정의’ ‘분배 불평등’ 같은 핵심단어로 이번 시위 사태를 분석하고 있다. 일과성이 아니라는 얘기다. 길게 봐서 사회 변동(變動)의 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들도 있다. 이제 관심은 글로벌 현상으로까지 확산된 반(反)월가 시위가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로 모아진다.

① 근본적 목표는

시위 참석자들만큼이나 목표는 제각각이다. 하지만 탐욕에 찌든 금융자본주의와 지금의 사회 시스템이 이대로 가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있다. 상위 1%가 부(富)를 독점하는 시대는 막을 내려야 한다는 것도 포함돼 있다. 그 공감대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한 달여 만에 글로벌 사회현상으로 확산됐기 때문이다.

유명한 사회·역사학자인 독일의 위르켄 코카 교수는 “시위가 여러달 장기간 계속된다면 정책 결정자들이 개혁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결과적으로 개혁이 시위의 목표라는 설명이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사회학과의 그레고리 D 스퀴레스 교수는 “얼핏 보면 시위대 주장과 목표가 명확치 않아 보이지만, 시위를 촉발시킨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불공정한 분배에 따른 분노”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어느 정도 개혁적 조치가 가시화될 때까지 시민사회가 기준치를 계속 제시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② 정치세력화 여부

‘우리는 정당이 아니고, 대변인도 없다. 민주적 시스템이 이끄는 시민운동이다’. 워싱턴DC 시위대가 공식적으로 밝히는 입장이다. 반월가 시위대가 최소한 정체세력과 연계돼 활동하고 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그들의 주장은 맞다.

하지만 이제 미국 내에서 이 시위 현상 자체가 중요한 정치활동이 돼버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 공화당 소속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나 낸시 펠로시 민주당 원내대표, 밋 롬니 등 공화당 대선 후보 등 시각은 다르지만 워싱턴 정치 리더들 중에서 시위 사태를 거론하지 않는 이들이 없다.

당연히 내년 대선에서의 영향이 관심이다. 일부 언론들은 진보세력의 ‘티파티’라고 규정했다. 시위대는 부정하지만 진보세력의 전위대로 발전할 것이라는 진단이 많다. 정치 전문가들은 진보와 보수 진영이 각각 이 상황을 지지 세력 결집에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③ 지지·반대 세력은

미국 내 대부분 도시에서 벌어지는 시위의 주도세력은 서로 연계돼 있지 않다. 통일된 지도부도 없다. 그들의 가장 강력한 배후 세력은 바로 여론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시위대 주장에 공감하는 여론은 70%를 넘나든다. 각 도시의 시위 지도자들은 SNS를 통해 공감대를 확산시켜 나간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뉴욕이나 워싱턴DC에서는 날마다 선전전과 함께 시위를 해야 하는 이유, 새로운 참석자에 대한 교육 등이 이뤄지고 있다. 노조와 민주당원 등 진보 세력이 상당히 동조하고 있다.

보수 진영은 한마디로 ‘계층갈등 조장’ ‘부자에 대한 근거없는 공격’으로 규정하고 있다. 시위의 대응세력으로 지목받고 있는 보수유권자 단체 ‘티파티’는 “시위대에는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며 자신들과 시위대를 대립 그룹으로 비교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은 시위가 좀더 조직화되고 장기화되면서 구체적인 요구까지 등장하면, 선거가 가까워올수록 두 세력이 진보·보수 진영의 전위대처럼 대립할 가능성이 많다고 보고 있다.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가 티파티를 집중 조명하며 주장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처럼, 진보 성향의 MSNBC도 반월가 시위를 확대 재생산하는 듯한 보도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이미 대립 구도가 형성돼가고 있는 것이다.

④ 한국사회 영향은

시위대는 시민을 상위 1%와 나머지 99%를 나눴다. 설사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계층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부분이 취약한 한국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내년 대선을 치르기 때문에 정치권이 반월가 시위 사태를 지지층 결집을 위해 각각 정반대의 방향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국은 정치권 조율 능력이 워싱턴보다 취약하고, 양극화 현상이 심하다는 차원에서 더욱 휘발성이 강하다는 분석도 있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