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어디서 축구 하나요”… 학교운동장 조기축구회가 독차지 “애들은 나가 놀아라”
입력 2011-10-17 21:25
지난 16일 오전 서울 도봉구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 조기축구회 회원들이 축구를 하는 가운데 담벼락 근처 한 귀퉁이에선 초등학생 4명이 조심스럽게 공을 차고 있었다. 이들은 “운동장 쪽으로 가면 아저씨들이 소리를 지르기 때문에 여기서 놀고 있다”고 말했다. 그 와중에도 어른들이 찬 공이 몇 차례나 아이들 쪽으로 날아왔다.
조기축구회 등 지역주민단체가 학교 운동장을 6개월 이상 장기 사용하는 경우 사용료의 80%까지 면제해 주는 ‘서울시 학교시설의 개방 및 이용에 관한 조례안’이 12일 서울시의회에서 통과됐다. 주민들은 운동장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고, 학교도 고정적인 수입이 생겨 좋지만 정작 학생의 운동장 사용엔 지장이 생겼다. 외부인 출입관리 규정과도 상충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례안이 통과되면서 조기축구회는 시간당 4000원 정도의 사용료만 지불하면 운동장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17일 “매년 200만∼300만원을 지불하던 이전보다 이용자가 크게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사용 가능한 시간이 명확하지 않아 일부 단체가 일요일뿐 아니라 토요일, 평일 새벽 및 방과 후에도 운동장을 이용하면서 정작 학생들은 방과 후 등 수업이 없을 때 뛰어놀기가 어렵게 됐다. 이 학교 김수빈(8)군은 “동네에 축구할 곳이 학교밖에 없는데 늘 아저씨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정부가 교내 성폭력 등을 방지하기 위해 배움터지킴이와 청원경찰 배치를 늘리고 외부인 방문증 발급을 의무화하는 시점에 운동장 개방을 확대하는 것은 보안강화 정책을 무색하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이 학교에서 조기축구회 회원들은 아무 제지 없이 수차례 교문을 드나들었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