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내곡동 사저 백지화] 사저 바꾼 靑… 與 권력구도 바뀌나

입력 2011-10-18 00:15

MB 조기 레임덕 싸고 엇갈린 시각

이명박 대통령이 17일 내곡동 사저 건축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한나라당의 요청을 수용함에 따라 향후 당청 간 역학관계도 변화가 예상된다.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는 “비록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고육책이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과거처럼 청와대가 당청관계를 주도하는 방식은 확실히 끝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올 들어 당청은 인사·친서민 청책 등을 놓고 대립하기는 했지만 어느 한쪽으로 힘의 균형이 쏠리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결정한 문제를 당이 뒤집었다는 ‘사실’은 앞으로 여권 내 무게중심이 당으로 쏠릴 것이라는 예상을 낳고 있다. 내곡동 사저 계획은 청와대 경호처가 주도했지만 최종 결정은 이 대통령이 했다. 이 대통령은 부지 계약 직전인 지난 5월 이 땅을 직접 둘러보고 매입토록 지시했다. 대통령이 자기가 살 집을 직접 결정하고도 비판 여론에 부닥쳐, 특히 여당의 요구에 밀려 철회한 것이다.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신율 교수는 “현 정권의 경우 상대적으로 이전 정권보다 ‘(청와대에 대한) 권력 집중도’가 높아 악재가 불거질 경우 역대 정권보다 힘이 빠지는 속도 역시 빨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반기 들어 이 대통령이 해외 순방만 떠나면 어김없이 국내에서 악재가 터지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는 점도 ‘조기 레임덕’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8월 몽골 등 순방 때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패해 국정 일정이 흐트러졌고, 9월 유엔총회에 갔을 때는 ‘이국철 사건’ 등 측근 비리가 불거졌다. 이번 방미 중엔 급기야 이 대통령이 직접 연관된 사저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돼 귀국하자마자 수습에 나서야 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이 이어질 경우 당의 차별화 시도 역시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친이명박계 좌장인 이재오 전 특임장관은 이날 밤 자신의 트위터에 “이 대통령의 측근은 부패와 비리가 없다는 게 자랑이었는데 최근 그것이 무너졌다. 이 대통령을 보필한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또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선 “청와대를 전면 쇄신해야 한다”며 “대통령실장이 모든 것을 관장하지 않나. 지금은 임시방편으로 넘어갈 때가 아니다”고 밝혀 사실상 임태희 대통령실장 경질을 요구했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선 급속한 레임덕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사저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을 볼 때 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당에 밀려 사저 건축 재검토를 지시한 모양새가 아니라는 얘기다. 친이명박계 직계인 조해진 의원은 “청와대 내부에서도 내곡동 사저 건축은 문제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고, 당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사안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제기된 당의 요구는 오히려 청와대를 도와준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한 핵심 당직자도 “이 대통령의 빠른 판단이 레임덕을 막은 측면이 있다”고 했다. 사저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10·26 서울시장 보선에서 여당이 패했을 경우 그 책임을 청와대가 뒤집어쓸 수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결정은 당과 청와대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관계에서 나온 산물이라는 것이다.

한장희 태원준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