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범’ 남편 선처위해 첩보하다 ‘운반책’ 몰린 40대 주부, 결국…

입력 2011-10-16 19:05


마약범죄자 남편이 재판에서 선처 받도록 마약 첩보활동을 하며 검찰 수사에 협조하려던 40대 여성이 되레 마약 운반 혐의로 기소됐다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여성은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지만 “중학생 아들에게 평생 ‘마약 엄마’라고 낙인찍힐 수 없다”며 항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모(45)씨는 지난해 7월 남편이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자 마약 관련 첩보 수집을 시작했다. 항소심에서 남편 형량이 낮춰질 수 있도록 마약사범을 제보하는 ‘작업’에 나선 것이다.

평범한 주부였던 김씨는 생계를 뒤로한 채 국내 마약상의 동향을 파악, 서울중앙지검에 여러 차례 찾아가 제보했다. 그러나 담당 검사는 김씨의 제보를 ‘던지기(허위 제보)’로 판단하고 귀담아 듣지 않았다. 김씨는 급기야 그해 8월 27일 중국에 가 정체불명의 한국인 마약 브로커와 접선했다.

김씨는 3일 뒤 귀국하다 인천공항에서 체포됐다. 브로커가 선물이라고 준 DVD플레이어 안에 히로뽕 49.59g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는 “히로뽕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 누군가에게 내가 이용당한 것 같다. 밀반입하려고 했으면 이렇게 DVD플레이어에 허술하게 숨겼겠는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김씨를 기소했다. 남편을 도우려다 여의치 않자 직접 히로뽕을 들여와 유통한 뒤 이를 사가는 이들을 제보하려 했다는 혐의가 적용됐다. 1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주위에서는 김씨에게 “옥살이 안 하게 된 것만도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씨는 마약사범이라는 죄명을 평생 달고 다닐 수 없었다. 10대 아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수사에 협조하려던 자신을 객관적 증거 없이 죄인으로 몰아세운 검찰이 야속하기도 했다. 그는 항소했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성기문)는 원심을 파기하고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가 범죄를 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입국할 때 누군가 국가정보원 요원에게 ‘김씨가 히로뽕을 숨겨 들어올 것’이라고 제보한 점 등에 비춰봤을 때 김씨가 제3자의 수사 첩보를 위한 희생양으로 이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공항 검색대에서 마약 소지로 현장 체포된 자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진 건 이례적이다.

노석조 기자 stonebir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