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42년간 연출 임영웅 “평생 무언가 기다리는… 인생이 그런 것 아니겠나”

입력 2011-10-16 17:50


“그리스 비극 작품들이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공연되잖아요. ‘고도를 기다리며’도 그런 작품입니다. 인류가 살아있는 한 ‘고도를 기다리며’는 살아남을 거예요.”

지난 13일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에서 임영웅(78) 연출을 만났다. 지금 산울림소극장에선 개관 26주년 기념으로 ‘고도를 기다리며’가 공연되고 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하루 종일 고도(Godot)를 기다리며 시간을 때우는 내용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1969년 국내에 처음 소개됐는데 그때 연출자도 임 연출이었다. 이번 공연은 국내에서만도 29번째이니, 임 연출은 인생의 반 이상인 42년간을 한결같이 ‘고도를 기다리며’와 함께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걸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초연 당시엔 (부조리극이) 보는 사람들한테도 낯설었지만 연극하는 사람들에게도 낯설었어요. 막이 올라가면 어떨까 짐작도 안가고. 관객 반응은 그야말로 문화적 충격, 그 자체였죠. 지금 연극하는 사람들 중엔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이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꽤 많아요.”

워낙 오래돼서일까. 사무엘 베케트라는 걸출한 원작자가 있음에도 ‘고도를 기다리며’ 앞에는 ‘극단 산울림’의 이름이 붙는 게 자연스럽다.

“초연을 준비하고 있을 때 베케트가 노벨문학상을 받아서 일주일 전에 표를 다 팔았지요. 일주일 전에 다 판 건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한 번도 없어요. 허허.”

듣고 싶은 건 더 있었다. 도대체 왜, ‘극단 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인가. 학교 극단에서부터 세계 유명극장에 이르기까지 숱하게 공연되고 있는 여타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극단 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무엇이 다른 걸까. 무엇이 다르기에 1989년 아비뇽 페스티벌 이후 해외 곳곳에서 끊임없이 임 연출과 극단 산울림을 부르는 걸까. 뜻밖에도 임 연출은 이 질문에 쉽사리 답변을 못했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웃음). 초연 때 유치진 선생을 비롯한 선배들에게서 ‘작품의 핵을 잘 파악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이 작품의 ‘핵’은 무엇일까.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이지요. 처음엔 ‘저 바보 같은 사람들은 대체 뭔가’하고 보지만, 보다 보면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고도를 기다리는 두 주인공이 신의 구원을 기다리는 인간의 모습이라고 분석들을 합니다만 저는 달리 볼 수 있다고 봐요. 인간이 어려서는 학교 가기를 기다리고, 그 후 상급학교 가기를 기다리고, 취직을 기다리고, 결혼을 기다리고, 아이를 기다리잖아요. 그렇게 평생 무언가를 기다리는 인생, 인간이 산다는 게 그런 게 아니겠는가 싶어요.”

그는 “나는 아직 ‘고도를 기다리며’에게서 느낄 점이 많다”며 덧붙였다.

“20세기가 끝날 때쯤 여기저기서 ‘이번 세기의 가장 위대한 희곡’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요. 첫손 꼽힌 게 ‘고도를 기다리며’예요. 저는 42년 동안 이 작품을 연출했는데 할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습니다. 방금 연습 때도 ‘아, 이 부분이 이런 뜻이었구나’ 하는 걸 깨달았는데 이게 매번 그래요.”

오랜 세월 공연되다 보니 배우들도 붙박이다. 한명구는 18년째 블라디미르, 박상종은 9년째 에스트라공 역이다. 94년 블라디미르 역을 한 적 있는 이호성은 2008년부터 포조 역을 맡고 있다.

극단 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내년 5월 루마니아 시비우 페스티벌과 몰도바 비테이 연극제에도 초청됐다. 13일 막이 오른 산울림소극장의 이번 공연은 다음 달 6일까지. 티켓 가격은 1만5000원∼3만원이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