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진숙경] 복수노조 시대의 문제와 과제
입력 2011-10-16 17:36
언어에는 문화가 녹아들어 있어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쉽지 않다. 중·고교 시절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필자로서는 지저스 크라이스트(Jesus Christ)라는 성스러운 이름이 영어권 나라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전문 용어에서도 이런 놀람과 당황은 적지 않다. 한국의 노동조합은 기업별 형태로 유럽이나 북미 나라들의 일반적인 직종별·산업별 조직 형태와는 매우 다르다. 따라서 한국 노조 조직 형태를 컴퍼니 유니언(Company Union)이라고 외국에 소개하면 매우 다른 의미로 통한다. 산별노조가 일반적인 이들에게 컴퍼니 유니온은 산별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사용자 측 주도로 만들어진 어용노조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기업 울타리 내에 노조가 결성될 경우 사업장 밖 노조에 비해 사용자들의 개입 가능성이 커지고 그 영향력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다. 우리나라도 1980년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 강제된 기업별 노조 시스템이 어용노조 시비의 중심에 서 있었던 적이 있다.
3개월 간 498개 새 노조 설립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복수노조 시대 출범 이후인 7월 이후 3개월 동안 498개의 노조가 새로 설립신고를 했다. 이 중 기존에 없던 기업에서 새롭게 노조가 만들어진 곳은 17.9%, 상급단체가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 소속인 기존 노조가 분화해 복수노조를 만든 곳이 73%, 양대 노총 미가입 사업장에서 분화한 노조는 9.4%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규 노조의 85.5%는 양대 노총에 가입하지 않은 독립노조이고 양대 노총에 가입한 노조는 14.5%에 불과하다.
고용부는 양대 노총에 가입한 기존 노조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만이 신규 노조 설립으로 이어졌다고 해석하고 있고, 노동계는 신규 노조가 대부분 어용노조이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고 반박하고 있다.
아직까지 이들 노조들이 어떤 이유로 분화되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가 접수된 사례는 20건에 불과하다. 하지만 명확한 증거 없이 부당노동행위를 접수하는 게 쉽지 않음을 고려한다면 사용자 주도나 영향 아래 설립된 신규 노조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제도가 ‘말 잘 듣는 과반수 노조’를 만들고 싶은 사용자들의 욕구를 충동질할 만큼 과반수노조에 대한 교섭 특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한국 노동조합들이 기업별 노조의 형태를 버리고 산업별 노조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교섭단위를 기업별로 묶어 둬 산업별노조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안정되려면 제도정비 필요
제도 도입 초반에는 한번도 가 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다양한 불협화음이 나오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미 지출돼 회수가 불가능한 매몰비용 오류에 빠지지 않고 예측하지 못했던 현실을 고려해 현실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제도 또한 제도의 첫 출발점에서 다양한 현실에 직면해 변화의 시기를 거쳐야 하는 것이고 이러한 여정의 끝에 제도의 안정화가 가능할 것이다.
노동조합의 설립 요건을 규정하고 있는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에는 노동조합은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야 함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근로자들의 자주적 조직이 아니라면 이는 노동조합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컴퍼니 유니온인 것이다. 노동조합이 노동조합으로서 제대로 서지 못할 때 이를 대신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각 조직들이 자기 위상에 맞는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진숙경 성균관대 HRD센터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