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승욱] 자본주의의 가을이 오는가?
입력 2011-10-16 17:33
지난달 17일 소규모로 시작된 월가 점령 시위가 한 달째를 맞으며 폭발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하위징아가 14세기를 중세의 가을이라고 했듯이, 21세기가 자본주의의 가을이 될 것인가?
1999년 시애틀 반세계화 시위 때의 ‘80대 20’ 구호가 반(反)월가 시위에선 ‘99대 1’로 변했다. 이번 시위의 특징은 전문 시위꾼들이 벌인 과거와 달리 자발적으로 일어났고,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공감이 확산되는 이유는 이익은 사유화되고 손실은 사회화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스 국민들의 반발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하는 시장경제의 자기책임 원칙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점령시위’가 한국에도 상륙했다. 그러나 미국의 시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저축은행 문제 등 금융관련 불만이 있지만, 금융위기 진원지인 미국과는 크게 다르다. 그리고 전문 시위꾼의 기획 데모라는 점에서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복지와 정의에 대한 요구는 매우 뜨겁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일본에 비해 인구 대비 4배나 팔린 것을 보면 한국 사회가 정의에 대해 얼마나 갈급해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복지와 정의에 대한 요구가 시장경제에 대한 근본 불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샌델 교수도 시장지상주의 때문에 공동선이 훼손되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지 시장경제체제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탁아소 예와 같이 아이를 늦게 찾아가는 부모들에게 벌금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금전적 유인은 돈으로 해결하려는 부모가 많아서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지각이 나쁘다는 도덕적 판단을 흐리게 함으로써, 공동의 가치를 훼손하게 된다. 성적이 올라가거나 책을 읽으면 돈을 주는 인센티브도 역시 독서와 배움의 즐거움을 훼손시킨다. 샌델의 이러한 지적은 경제적 인센티브를 무분별하게 사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해서 일깨워 주었지만, 해결책을 제시한 것도 아니고 시장경제의 근본을 부정한 것도 아니다.
경제학자들은 인센티브의 힘을 이용한다. 이것을 가장 잘 활용한 제도가 시장경제제도다. 애덤 스미스 이전에는 인센티브에 반응하는 인간은 저급하게 보았다. 인센티브보다 고귀한 이념, 사랑, 헌신 등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많아야 사회가 좋아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를 개선시킬 수 있을 정도로 그런 사람이 많아지지 않는 것이었다. 경제학자들의 공헌은 인센티브를 적절하게 활용하면 사회적으로도 유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인센티브가 너무 강해 게임규칙을 어기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정부가 필요하다. 또 빈부격차가 너무 커져 공산주의와 복지국가 실험도 해 봤다. 그러나 아직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대신할 체제를 찾지 못했다.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도 자본주의 비판서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의 부제는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다’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자본주의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좋은 경제 시스템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금융자본의 탐욕을 비난하는 미국 젊은이나 국가부도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시키는 것을 반대하는 그리스 국민이나, 복지와 정의를 요구하는 한국 국민이나 시장경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 규율이 작동하지 못하고,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에 반발하는 것이다. 샌델의 지적과 같이 비경제적 영역이 경제논리로 지배받는 것도 문제지만, 한국 사회에서 더 큰 문제는 경제영역이 정치논리에 의해서 지배받는 것이다. ‘점령시위’가 가을이 오는 징표는 아니다.
김승욱(중앙대 교수·경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