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89) 신라 두 여성의 합장 무덤
입력 2011-10-16 18:10
신분·함께 묻힌 사연 수수께끼 진실 풀릴까
지금으로부터 96년 전인 1915년, 경북 경주 보문리의 나지막한 구릉에서 신라시대 무덤 하나가 발견됐습니다. 고분 안에는 나무로 관을 짜고 돌무지로 쌓은 적석목곽(積石木槨)과 돌무덤으로 통하는 굴이 있는 횡혈식석실(橫穴式石室)이 나란히 발굴됐답니다. 이는 8세기 신라 고분의 전형적인 구조로 무덤의 주인은 왕족이거나 최고위층 인사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적석목곽에서는 칼날에 인삼잎 무늬가 새겨지고 손잡이 끝 부분에 둥근 고리가 있는 삼엽문(蔘葉文) 환두대도(環頭大刀) 한 점과 은팔찌 두 점, 금귀걸이 한 쌍이 나왔으며, 석실에서는 삼국시대 같은 종류의 유물 가운데 가장 화려한 금귀걸이 한 쌍(국보 제90호)이 출토됐습니다. 칼이 나온 적석목곽은 남자의 무덤이요, 귀걸이가 나온 석실은 여자의 무덤으로 간주됐지요.
신분은 알 수 없지만 남녀의 관이 한 고분 안에 나란히 놓여 있는 점으로 보아 부부의 무덤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그래서 이 고분의 이름을 ‘경주 보문리 부부총(夫婦塚)’이라고 불렀답니다. 아무 의심의 여지도 없이 그렇게 9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국보까지 출토된 고분이지만 그동안 발굴조사 보고서도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신라 능묘의 미공개 자료들을 하나씩 정리해 발굴보고서를 발간하는 작업을 추진 중인 국립경주박물관이 ‘경주 보문리 부부총’을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96년 만에 쓴 발굴보고서의 내용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무덤의 주인공은 부부가 아니라 두 명의 여성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고분 이름도 ‘부부총’에서 ‘합장분’으로 바꾸었답니다.
그 근거는 이렇습니다. 남성용으로 알려진 환두대도가 신라시대 여성 고분에서도 자주 발견된다는 점에서 남성 전유물은 아니라는 사실, 환두대도를 무덤 주인이 차고 있었다면 남성의 무덤으로 간주할 수도 있으나 정밀 감정 결과 찬 흔적은 없고 단순히 부장품으로 무덤에 두었다는 사실, 남성 무덤에서 주로 발견되는 허리띠 등 유물이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두 무덤의 인골이 수습됐다면 DNA 분석을 통해 성별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 인골은 여성 무덤이 확실시되는 석실에서만 나와 아쉬움을 더합니다. 그렇다면 두 여성은 어떤 관계이며 왜 나란히 묻혔을까요. 고위 권력자의 첫째와 둘째 부인일 수도 있고, 시어머니와 며느리, 엄마와 딸, 자매 또는 동서 등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겠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오는 30일까지 ‘경주 보문동 합장분-96년 만에 쓰는 발굴보고서’ 특별전을 개최합니다. 전시실 중앙에 적석목곽과 석실 내 안치했던 목관 및 부장품을 재현하고, 신라시대 지역 최고위층의 고분 유물을 비교하기 위해 경남 양산 금조총(金鳥塚) 출토 금귀걸이도 선보인답니다. 전시를 관람하면서 두 여성이 함께 묻힌 합장분의 수수께끼를 풀어보시죠.
문화생활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