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사실화로 표현한 ‘가을의 전설’… 홍익대 동창 4인방 전시회
입력 2011-10-16 18:09
벽돌 그림으로 유명한 김강용, 사유의 공간을 표현하는 이석주, 의자를 통해 시공간을 묘사하는 지석철은 홍익대 미술대학 71학번 동기생이다. 그리고 자연의 안과 밖 이미지를 화면에 옮기는 주태석은 74학번으로 3년 후배다. 단색조의 미니멀한 추상화가 국내외 화단에 들불처럼 유행하던 1970년대, 이들은 사진보다 더 실제 같은 극사실주의 작업에 뛰어들었다.
당시는 추상화를 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극사실을 추구하게 됐다”고 한다. 이들의 극사실 작업은 미국의 하이퍼 리얼리즘과 동시에 각기 출발했는데, 미국과는 다른 우리 특유의 맛이 살아 있다는 평가와 함께 ‘한국 극사실 1세대’ 작가로 분류된다.
김강용 작가의 벽돌 그림은 입체적이다. 색깔이 있는 모래를 바르고 상감청자 제작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엄청난 공력을 필요로 한다. 화면에 쌓여 있거나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벽돌들은 낱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공존하는 삶의 모습을 상징한다. 작가는 “자신만의 특성을 갖고 자신의 이야기를 끈질기게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석주(숙명여대 교수) 작가의 그림에는 기차, 말, 시계, 장미 등이 늘 등장한다. 이를 통해 사유의 공간에 대한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의도다. 작가는 이번에 책 그림을 그렸다. ‘책은 오래된 문명의 시계’라는 개념에서 출발한 신작은 기존 작품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누렇게 바랜 책 종이와 너덜너덜한 책의 가장자리는 소장자의 손때와 학문을 향한 숱한 노력이 느껴진다.
지석철(홍익대 교수) 작가의 작품에는 의자가 어김없이 나온다. 해변 모래사장에 의자들이 쌓여 있고 그 너머로 파도가 일렁이는 풍경은 삶의 고독을 느끼게 한다. 앉을 수도 없는 모형 의자이지만 누군가 찾아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은 혼자 살 수는 없다. 그러나 개개인이 파도처럼 부서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의자들은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주태석(홍익대 교수) 작가의 숲과 나무 그림은 싱그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진 색채가 동화적이다.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로 드리워진 그림자는 정적과 고요를 더해주며 화면에 깊이감을 선사한다. 그런가 하면 녹색 잔디에 신록이 우거진 그림, 한 줄기 나무가 외롭게 서 있는 그림, 나뭇잎이 퇴색하고 빛을 잃어가는 그림 등이 사계절의 변화를 전한다.
유사한 화풍을 지향하고 있으면서도 독립적인 길을 걷고 있는 이들 4인방이 40년 만에 뭉쳤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갤러리와 용산 비컨갤러리에서 11월 4일까지 ‘가을의 전설’이라는 타이틀로 전시를 연다. 초기작과 최근작 등 10여점씩 출품했다. 한국 극사실 작업의 과거와 현재를 아울러 조망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전시다(02-567-1652).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