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월드 5위 청각장애 김혜원씨 “도가니 영화 얘기로 들었지만… 피해 학생들과 같이 싸우고 싶은 생각”
입력 2011-10-14 18:06
지난 8월 30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 미스월드코리아 대회장. 사람들의 시선은 유독 말이 없던 21번 참가자에게 몰렸다. 그는 수화로 이렇게 얘기했다.
“저는 비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맑고 순수한 소리는 들을 수 있습니다. 저도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세계에 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청각장애인 김혜원(20·국립서울농학교 3학년)씨. 올해 처음 열린 미스월드코리아에서 그녀는 당당히 5위에 이름을 올렸다. 다음 달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미스월드 대회에 나갈 한국 대표가 된 것은 아니지만 비장애인들을 제치고 입상자 안에 든 것이다. 대외적 공신력을 가진 미인대회에서 장애인이 입상한 것은 김씨가 처음이다. 지난 12일 서울 신교동 서울농학교에서 그를 만났다.
공교롭게도 그가 입상한 뒤 청각장애인들에 대한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가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그의 심정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김씨는 “엄마가 영화를 보면 제가 상처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아직 보지는 못했다”며 “하지만 얘기를 들었을 때 피해 학생들과 같이 싸우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꼭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서 꿈을 펼쳐 나갔으면 좋겠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우연히 인터넷을 보고 미스월드코리아에 나간 그는 당초 입상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입상 순간에 대해 “기쁘고도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내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나 정도면 2, 3위는 돼야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해맑게 웃었다.
장애를 갖고 있지만 그는 수영, 암벽등반 등 안 해본 스포츠가 없을 정도로 활동적이다. 또 3년째 하고 있는 타악기 연주 ‘난타’는 스스로도 “잘한다”고 할 정도로 수준급이다. 김씨는 특히 과거 인공 와우수술 부작용으로 쓰러지거나 남들과 의사소통이 잘 안 돼 힘들 때마다 ‘난 즐겁다’고 확신하면 힘이 난다고 했다.
원래 그의 꿈은 바리스타였다. 하지만 입상을 계기로 연기자로도 영역을 넓혀보고 싶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앞장서서 알릴 수 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한편 그동안 미스월드 대회에는 미스코리아 대회 선(善) 입상자가 출전해왔다. 하지만 미스월드 측에서 이에 불만을 제기하고 한국 대표를 직접 선발하기로 결정, 올해부터는 미스월드코리아 우승자가 미스월드 대회에 나가게 된다.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