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통상교섭본부장이 이완용이라니

입력 2011-10-14 17:24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을 위한 절차를 끝내면서 공은 한국 국회로 넘어왔다. 한·미 FTA 비준안은 현재 국회 상임위원회인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상정돼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이다. 외통위가 속결처리를 원하는 여당과 저지를 선언한 야당의 첫 번째 충돌지점이다. 야당이 외통위 위원을 교체하며 전열을 가다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제 민주당 외통위원으로 긴급 투입된 정동영 의원의 발언은 한·미 FTA에 대해 편향된 시선을 깔고 있다. 그는 “한·미 FTA는 ‘낯선 식민지’이고, 국회가 이를 비준하는 것은 을사늑약을 추인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많은 국민의 생각이고 내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겨냥해 “미국과 한통속이다. 옷만 입은 이완용인지 모르겠다”라고 비난했다.

국익을 위해 밤낮없이 일해 온 통상전문가를 이완용이라고 지칭한 것은 인격모독적 발언이다. 총독부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며 나라를 팔아넘긴 이완용과 우리 정부의 뜻을 받들어 협상타결을 이끌어낸 외교관을 수평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또 을사늑약은 일본의 강압에 의한 것이지만 한·미 FTA는 당사국의 합의에 따르는 협정이다. 우리가 싫으면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FTA를 국가경영전략으로 삼고 협상에 매진해 왔다. 현재 중국이나 호주와의 FTA 협상까지 추진하고 있는 것도 글로벌 경제를 이끌어갈 대안으로 보기 때문이다. 야권 일각에서 농축산업의 피해를 보전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된다면 통과시키는 것이 국익에 이롭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국민의 뜻” 운운하며 공당의 최고위원이 FTA의 성격을 왜곡하는 것은 유감이다. 특히 국내정치가 아니라 외교통상의 문제는 상대가 있는 만큼 발언에 격조를 갖춰야 한다. 김종훈 본부장이 이완용이라면 오바마 대통령은 이토 히로부미 아니면 일왕이라도 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