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한승주] 뜨거운 父情
입력 2011-10-14 17:29
5년 전인 2006년, 이스라엘 군대에서 복무 중이던 열아홉살 아들 길라드 샬리트가 적군인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게 납치됐다. 이스라엘군은 대대적인 구출작전에 나섰지만 아들을 찾지 못했다. 아들의 생사도 불확실했다. 납치 1년 후에야 아버지 노암 샬리트는 테이프를 통해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 총리는 아들의 석방 협상에 나섰지만 성과는 없었다. 이스라엘이 샬리트 상병의 석방을 요구하자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수감된 포로 1000여명과의 맞교환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재소자 대부분이 테러범이라 들어줄 수 없다며 협상을 미뤄왔다.
다급한 부정(父情)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2008년 4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아버지는 “아들의 석방을 도와 달라”고 무작정 매달렸다. 지난해 6월에는 아들 사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아내와 12일간 국토 횡단 행진을 했다. “이스라엘의 아들은 아직 살아있다”고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국토 횡단의 종착지는 예루살렘의 총리 관저. 무려 200㎞를 걸어 이곳에 도착한 부부는 총리 관저 앞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그는 당시 “총리가 아침에 집을 나설 때나 밤에 들어올 때 우리를 볼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절대 우리 아들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이스라엘군 공격에 다친 팔레스타인 병사를 직접 찾았고, 수감 중인 팔레스타인 군인의 부모를 만나 자식과 헤어진 고통을 서로 위로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모든 청년이 3년간 의무 복무를 해야 하는 이스라엘에서 아버지의 정성은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침내 이스라엘 내각은 표결 끝에 포로 교환을 승인했고, 지난 11일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샬리트 상병 1명과 팔레스타인 재소자 1027명의 맞교환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여서 어떠한 타협도 불가능해 보였던 이스라엘과 하마스. 아버지는 양측의 마음을 모두 움직였다. 샬리트의 석방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 정착에 획기적인 계기가 되길, 중동평화의 희망이 되길 기대해본다.
한승주 차장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