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병들고 비틀대던 미군 자취 감춰… 고요해진 이태원

입력 2011-10-13 18:25


12일 오후 11시 서울 이태원동 유흥가에 위치한 A클럽을 무전기를 든 미군 헌병 4명과 이태원지구대 소속 경찰 2명이 급습했다. 클럽에는 한국 여성 4∼5명밖에 없었다. 미군 헌병과 우리 경찰은 A클럽 내부를 살펴 본 뒤 다른 클럽으로 이동했다.

주한미군 성폭행 사건으로 지난 7일부터 30일 동안 야간통행금지 조치가 시행된 뒤 이태원 밤거리에서 미군 장병들의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영외 거주자를 제외한 주한미군은 평일에는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주말에는 오전 3∼5시 야간통행이 금지된다.

미군 헌병들은 통금 이후 이태원 일대에서 순찰활동을 강화했다. 13일 자정을 전후해 용산 기지 주변을 다니는 미군은 한 명도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미군들이 잔뜩 움츠러들어 술 마시러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술집 주인은 “평소 미군은 밤만 되면 손에 맥주병을 들고 거리를 돌아다녔지만 최근에 이런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고 전했다.

미군의 야간통금에 대한 상인과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24시간 편의점을 운영하는 임모(58)씨는 “미군이 발길을 끊으면서 매출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다지 나쁘지 않다”면서 “심야에 미군이 가게 안에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길거리에서 싸움을 하는 바람에 아르바이트생들이 무서워 그만두는 일이 잦았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모(21·여)씨는 “그동안 미군에게 안 좋은 일을 당해도 보상받을 길이 막막해 두려웠는데 최근에 군인들이 안 보여 좀 낫다”며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이 개정되지 않는 한 통금이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근 여고에 다니는 서모(18)양은 “교복을 입고 있어도 술병을 손에 들고 있는 미군이 말을 걸 때가 많아 무서웠다”고 말했다.

반면 미군들이 자주 다니는 클럽은 울상이었다. 12일 밤에 둘러본 클럽들은 음악소리만 요란했을 뿐 테이블은 비어 있었다. K클럽 매니저 이모(39)씨는 “예전에는 미군들이 이태원에서 주로 놀았는데 지금은 강남이나 홍대 쪽으로 많이 가 이태원 상권이 위축되는 상태였다”면서 “가뜩이나 가게를 운영하기 어려웠는데 통금 조치로 손님이 더 뜸해졌다”고 말했다.

이태원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김모(32·여)씨는 “솔직히 미군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골치 아프다”면서 “미군은 행패를 부리다가도 헌병이 나타나면 조용해지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경찰이 출동해도 안하무인으로 행동할 때가 많다”고 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