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함부로 쉽게 말하지 마라… 영화 ‘오늘’ 피해자 입장에서 질문

입력 2011-10-13 17:55


“대책 없는 용서는 죄악입니다.”(형사)

“제가 꼭 용서해야 했나요?”(다혜)

“용서는 미움을 없애는 게 아니라, 미움을 마음의 가장자리로 밀어놓는 것이에요.”(살인 피해자 유족)

오는 27일 개봉하는 ‘오늘’(15세 이상 관람가)은 묵직하고도 불편한 주제의 영화다. ‘미술관 옆 동물원’(1998), ‘집으로…’(2002)를 통해 독특한 세계를 보여준 이정향 감독의 9년 만의 복귀작인 이 영화는 용서라는 행위에 대해 피해자 입장에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1년 전 자신의 생일에 오토바이 뺑소니 사고로 약혼자를 잃었지만 탄원서를 내 가해자인 소년을 용서한 방송국 PD 다혜(송혜교). 가톨릭 신자인 다혜는 용서는 선(善)이고, 용서가 가해자를 새 삶으로 이끈다는 믿음에서 용서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는 가해자를 용서한 이들을 만나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안도하지만 이내 혼란에 빠진다. 가족을 잃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유족들을 만나면서 용서를 받고도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 것. 특히 자신이 용서해 풀려난 소년이 이후 학교 동급생을 살해해 소년원에 수감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다혜는 자신의 용서가 또 다른 불행의 씨앗이었음을 깨닫고 절망한다.

영화는 여기에 미국 명문대에 합격해 유학을 앞두고 있지만 아버지의 상습적인 폭행을 견디지 못해 집을 뛰쳐나와 오빠 친구인 다혜를 찾아온 소녀 지민(남지현)의 이야기가 겹쳐지며 용서의 양면성을 밀도 있게 파헤쳐 간다. 다혜와 지민은 둘 다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지만 이에 반응하는 방식은 정반대다. 다혜는 아픔을 안으로 삭이고 내면화하지만 지민은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상처를 밖으로 거칠게 토해 낸다.

4년 만에 영화에 출연하는 송혜교(29)는 아픔을 갈무리하는 절제된 연기로 한층 성숙된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어린 덕만 공주로 얼굴을 알린 아역 배우 남지현(16)은 거친 말투와 행동 속에 깊은 상처와 슬픔을 담아내는 연기를 무난하게 소화했다.

이정향 감독은 12일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우리 모두 남의 상처에 대해 함부로 용서를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이 영화가 피해자 유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제목을 ‘오늘’로 한 이유에 대해 “피해자 가족들이 과거의 상처를 곱씹으면서 하루를 소진하지 말고, 오늘 하루만이라도 마음의 중심에 있는 분노를 변두리로 밀어내고, 자신을 위해 살았으면 하면 바람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라동철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