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정의 사진] 멕시칸 슈트케이스
입력 2011-10-13 18:09
로버트 카파는 전설적인 전쟁 사진가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촬영한 ‘스페인 병사의 죽음’은 그에게 유명세를 안겨줌과 동시에 전쟁 사진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했다. 그러나 이 사진은 끊임없이 연출 논란에 휩싸여 왔다.
전쟁터의 병사가 너무 깨끗한 셔츠를 입었고, 총상으로 쓰러지고 있음에도 포탄 자국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등이 의심의 이유였다. 포토저널리즘의 진정성 자체가 흔들릴 만한 이 중대 사건의 실마리는 오직 촬영 당시의 연속 장면을 담은 필름만이 풀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필름은 전쟁 중에 분실됐다. 카파는 나치가 프랑스를 침공한 39년 급하게 미국행 배에 몸을 실었고, 당시 암실을 관리하던 친구 치키가 길에서 만난 칠레인에게 관련 필름을 칠레 영사관에 맡겨달라고 부탁했다. 한동안 나치 수용소에 갇혔던 치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풀려났지만 이미 필름은 사라진 뒤였다.
75년 베트남전 촬영 도중 지뢰를 밟아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카파는 이 필름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의 필름은 꼬박 반세기가 지나 그 존재를 드러냈다. 95년 멕시코 영화 제작자인 타버가 우연히 숙모의 유품에서 필름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카파의 동생과 친구 사이인 뉴욕 퀸즈칼리지의 제랄드 교수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필름은 곧바로 카파의 동생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멕시코 정부는 스페인 내전 당시 수많은 난민을 조건 없이 받아들였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그 필름이 멕시코에 머물러야 한다고 믿었다. 반면 카파의 동생인 코넬 카파에게 필름은 자신이 물려받아야 할 유품이었다. 코넬 카파는 형을 기리기 위해 뉴욕에 국제사진센터를 설립한 인물이다.
필름을 처음 발견한 타버는 그 사이에서 필름의 영원한 안식처를 놓고 외교적, 도의적 갈등을 했다. 필름은 공개되지 않은 채 덧없는 시간이 흘렀고, 마침내 2007년 12월 국제사진센터에 전달됐다. 타버는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다.
타버가 국제사진센터에 전달한 것은 4300컷 필름이 담긴 종이 상자, ‘멕시칸 슈트케이스’였다. 멕시칸 슈트게이스는 문제의 필름을 담은 최초의 여행 가방이면서 카파의 필름 분실 사건 전체를 일컫는 이름으로도 통한다. 하지만 이 필름이 어떻게 타버의 숙모에게 전해졌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는다. 다만 숙모의 아버지가 프랑스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고, 누군가 이 외교관에게 전달했을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국제사진센터는 올 봄 처음으로 뉴욕에서 문제의 필름을 전시했다. 현재는 유럽 순회전을 열고 있다. 그러나 연출 논란에 휩싸인 ‘스페인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필름은 애석하게도 멕시칸 슈트케이스에 존재하지 않았다. 천부적인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발휘한 로버트 카파는 영원히 사라진 필름과 함께 더 큰 신화적 인물이 되어버렸다.
<사진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