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입양제도
입력 2011-10-12 19:39
유교권 문화인 우리나라와 일본은 가문을 잇기 위한 입양제도가 일찍부터 발달했다. 후손 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경우 대가 끊긴다고 생각해 가까운 친척의 아들을 양자로 삼는 관습이 널리 존재했다. 여자도 상속을 받았던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양자제도가 활발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학자들의 연구결과다. 상속받은 딸이 사위와 함께 제사를 대신 지내고 대를 잇는다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일본은 입양을 가문을 잇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강했다. 신분제 사회를 오랫동안 경험한 일본은 막부시대에 직업조차 함부로 바꿀 수 없도록 조치한 영향이 아직도 남아 있다. 중세 유럽의 왕가처럼 일본의 사무라이도 엽전, 호리병, 떡갈나무 잎 등을 가문의 상징인 문장(紋章)으로 사용할 정도로 자부심이 셌다.
그렇지만 두 나라 모두 산업화 이후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이 서서히 해체되면서 입양을 통해 가문을 잇는다는 의식이 엷어지기 시작했다. 여권운동이 활발했던 우리나라에서는 민법 개정으로 2008년부터 호주제가 아예 사라지고 가족관계등록부로 대체됐다. 가문을 잇는다는 의미가 적어도 법적으로는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이다. 가(家)를 중심으로 작성됐던 호적이 없어지고 개인별로 출생·결혼·사망 기록 등만 기재되기 때문이다.
6·25로 전쟁고아가 많이 생겨 입양이 무척 성행했던 때가 있었다. 유달리 핏줄을 중요시한 탓에 해외입양이 압도적으로 많긴 했지만 입양을 통해 버려진 아이를 데려다 키워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때에도 호적에는 부부가 혼인 중에 낳은 친자인 것처럼 위장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아이의 장래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인 박원순 변호사가 작은 할아버지의 양손(養孫)으로 입적된 것이 병역을 피할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문제로 시끄럽다. 우리 민법에 양자제도는 있지만 양손제도는 없다는 이유로 공방이 한창이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 진실을 밝히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양자나 상속 등은 실정법보다는 관습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가족법 전공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양자라고 하면서도 호적에는 올라 있지 않고 족보에만 올라 있기도 하다. 또 양자로 간다면서 재산만 상속받고 입적하지 않는 사례도 있다. 국민들의 실생활을 법이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