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문일] 늦깎이 안철수, 예비군 박원순

입력 2011-10-12 19:38


안철수 쇼크는 정치의 위기라기보다 정치인의 위기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정치와 무관했던 인물 때문에 정치판이 요동치는 현상은 우리 정치의 기틀이 그만큼 허약함을 드러낸다. 그 원인 중에는 정치인들의 부실과 정치 환경의 변화가 있다. 근대국가에서도 정치인은 전통적으로 특정 계층에서 충원되어 왔다. 독립운동가와 민족자본가 층이 다수였던 우리 제헌 국회는 그 후 관료, 군인, 법률가, 교수, 건달, 한량 등으로 구성 성분을 늘렸다. 1980년대 이후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국회에 진출했고 기성 정치인들처럼 적당히 타락해 갔다. 그로부터 30년 지난 지금은 새로운 부류가 이들의 자리를 위협하게 되었다. 이들은 박원순 같은 시민단체 운동가와 안철수 박경철처럼 기존 프레임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지식인 계층에서 나오고 있다.

안철수는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어 무료 보급한 행위로 우리 시대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이미지를 얻었다. 박경철은 저술과 강연, 방송 활동을 통해 가혹한 경쟁 시스템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을 위로하는 ‘감정 전도사’ 역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친 ‘청춘콘서트’는 우리 사회에 어느새 가득해진 루저(loser)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안철수 서울시장 출마 소동’은 제 이익에 탐욕스럽되 미래 세대가 안고 있는 문제 해결에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정치인들을 대체할 대안 지도자의 출현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가능성이 안철수 쇼크를 내년 대선의 상수(常數)로 만들 수 있는 동력이다. 이제 어떤 대선 후보도 ‘루저 세대’의 좌절을 달래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지 않는다면 호응을 얻기 어렵게 되었다.

역사는 소수의 영웅이 이끌어 나가는 것처럼 설명되지만 대중은 그들이 이루어 놓은 것을 자주 뒤집는다. 그런데 그 대중을 아마추어가 리드하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다. 이 아마추어가 뒤늦게 정치적으로 각성한 존재일 때 상황은 더욱 극적이 된다. 안철수와 박경철은 둘 다 의사 출신이다. 우리 사회에서 의사라는 직업의 의미는 분명하다. 의대에 가기 위해 남들보다 더 공부를 했을 것이고, 대학에 가서는 그보다 더 많이 공부했을 것이다. 사회의식에 눈뜨고 정치 문제에 진지한 관심을 가질 여유 없이 의사가 된 그들은 인술을 편다는 고양감을 갖기도 하지만 사각의 흰 벽 안에 갇혀 사는 답답함을 안고 살아왔을 터이다. 박경철의 ‘시골의사’라는 별명에서는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안철수의 정치적 상품성을 노리는 세력은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의식은 정치화되었으나 정치 기술이 있을 리 없는 그가 유혹에 잘 대처할 것 같지는 않다. 서울시장 건만 하더라도 일부 언론이 출마 쪽으로 몰아가자 덜컥 올라탔다. 결국에는 그가 개혁 대상으로 지목했던 민주당에 무게를 실어주는 결과가 되었다. 그의 리더십은 정감(情感)에 바탕을 둔 카리스마형이지 실무형은 아니다. 준비 없이 대선 바람에 휩쓸리다 노회한 정치세력에 이용당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시민단체는 프로집단이다. 정치적으로 충분히 각성된 예비 정치인들의 모임이다. 박원순 역시 총선 낙선운동을 주도하는 등 정치 주변에 있었다. 지난 정권에서는 대기업의 사외이사가 되는 등 권력형 후원을 업고 시민단체를 운영했다. 그의 정치적 각성은 서울대에 입학한 지 몇 달 만에 얼떨결에 시위에 휘말려 제적당한 일에서 비롯된다. 서울시장에 나서게 된 동기 중 하나로 ‘현 정권에서 탄압을 받았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그가 새로운 비전보다 전임자 정책을 백지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 것도 ‘부정의 사고’에 익숙함을 드러낸다.

안철수와 달리 박원순의 권력의지는 매우 강하다. 두 사람이 서울시장 출마를 놓고 대좌했을 때 박원순의 일방적 열변에 안철수는 한마디로 양보했다. 막스 베버는 정치가의 자질로서 열정과 책임감, 그리고 열정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판단력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 점에서 안철수와 박원순 모두 정치적으로 필요한 자질을 인격에 내면화하는 숙성기간이 없었다는 게 큰 약점이라 하겠다.

문일 카피리더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