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송세영] 전시행정의 표본 자전거도로

입력 2011-10-12 19:41


서울 한강과 인천 앞바다를 연결하는 아라뱃길을 따라 왕복 36㎞의 자전거도로가 개통됐다. 경기도 팔당에서 양평까지 이어지는 한강변 자전거도로가 최근 완공되는 등 4대강을 따라 건설되는 총연장 1728㎞의 자전거도로도 연내에 모두 개통될 전망이다. 정부는 나아가 2019년까지 1조2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전국 순환 자전거도로망을 건설하고, 이후 내륙 연계망까지 만들겠다고 한다.

코스모스와 갈대가 어우러진 강변을 따라 달리는 자전거 행렬. 서울에서 목포를 거쳐 부산 지나 강릉까지 거침없이 달릴 수 있는 자전거길. 홍보용 그림으로는 제격인데, 과연 그만한 실속이 있을까.

우리나라에 자전거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어닥친 것은 2005년쯤이다. 이 해에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자출족’이 눈에 띄게 늘었고 이들을 위한 인터넷 카페의 회원이 1만명을 넘어섰다.

이전에는 다용도의 ‘생활자전거’나 모양만 산악자전거(MTB)와 비슷한 ‘유사 MTB’, 그중에서도 접이식 자전거가 주종을 이뤘다. 철로 만들어 무거웠을 뿐만 아니라 녹도 잘 슬었고 고장도 잘 났다. 아파트 자전거 거치대에는 버려진 자전거들이 종종 눈에 띄었는데, 막 타다 버려도 그리 아깝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경주용 사이클이나 제대로 된 MTB로 속도감을 즐긴 이들은 소수의 마니아들뿐이었다.

그러나 웰빙 트렌드와 맞물린 자전거 출퇴근 바람이 불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출퇴근에 제격인 ‘하이브리드’라는 낯선 종류의 자전거가 대중화됐고, 상대적으로 고가인 본격 MTB와 경주용 자전거도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휴일이나 주말이면 산으로, 교외로 나가는 자전거족들도 크게 늘었다. 자전거는 이제 ‘개념 있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2000년대 후반을 강타한 자전거 붐은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과 맞물리면서 국가 차원의 정책과제로 급부상하게 된다. 전국일주 자전거도로를 건설하겠다는 거대 프로젝트가 탄생한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다.

가장 큰 문제는 자전거의 주된 용도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전거는 기본적으로 근거리 교통수단이다. 물론 장거리 주행도 가능하지만 주말이나 휴일 레저용도다. 시와 시, 군과 군, 도와 도를 연결하는 장거리 자전거도로의 이용자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방의 경우 자동차전용도로가 아닌 국도나 지방도는 교통량이 적어서 자전거로 이용해도 그리 위험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반면 자전거가 근거리 교통수단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생활권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국회의사당이 있는 서울 여의도에 새로 생긴 자전거도로만 해도 택시 정차장이 된 지 오래다. 한강이나 지천 둔치의 자전거도로 중에는 여전히 산책로와 분리되지 않은 곳이 적지 않다. 자전거들이 고속으로 줄지어 보행자들을 피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 아찔할 때가 종종 있다.

비용도 문제다. 1조원이 넘는 건설비용뿐만 아니라 유지·보수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강변이나 천변의 둔치를 따라 건설된 자전거도로들은 폭우로 침수피해를 입으면 파이거나 파손되기 일쑤다. 수도권의 자전거 도로 중에도 예산 부족으로 제때 유지·보수를 못해 불편을 주는 곳이 많은데, 인적 드문 지방의 외진 자전거도로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정부가 자전거타기를 활성화하고 싶다면 인구밀집 지역의 생활권 자전거 환경부터 개선하는 게 우선이다. 막대한 혈세를 들여 ‘전국일주 자전거도로’ 정책을 밀고 나간다면 ‘전시행정’의 표본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송세영 사회부 차장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