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월드컵 태극전사 ‘희망 슛∼’… 빅이슈코리아 ‘빅판’ 조현성 코디네이터
입력 2011-10-12 18:16
“근처 병원에 아이가 있는데 차비 1000원이 없어 못 가고 있어요. 1000원만 주시면 안 될까요?”
한 중년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건다. 행색을 보아하니 노숙인이다. 줄곧 미소를 띠던 젊은 남자는 금세 정색을 한다. “빅이슈 아세요? 일은 하지 않으세요?” 중년 남자는 막일을 한단다. 젊은 남자가 명함을 건넨다. “막일 하지 말고 이리로 오세요. 그쪽으로 일하러 오세요. 그냥 드릴 수 없어요.” 잠시 애절한 눈빛을 보내던 중년 남자는 더 이상 소용없음을 알았는지 자리를 뜬다. 젊은 남자는 빅이슈코리아 빅판 코디네이터 조현성(28·열린교회)씨다. 10일 그와 서울 영등포공원에서 인터뷰 도중 일어난 일이다.
홈리스의 가능성을 보여주자
지난 8월 프랑스에서 열린 홈리스 월드컵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조씨. 지난해 브라질 대회에 이어 두 번째 출전이었다. 성적을 바라보고 간 것은 아니었다. 대회를 준비하며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홈리스들을 보는 게 큰 보람이었다.
“저 자신도 하나님이 잡아주시지 않았으면 마음을 닫고 그들처럼 살았을지 몰라요. 그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제 사명이라고 생각했어요.”
일주일에 두 번씩 연습을 하던 홈리스들은 1, 2주가 지나면서 눈빛이 달라지고 얼굴이 밝아졌다. 지금 그들은 취업을 준비하고, 공장에 취업하고, 군 입대를 하는 등 모두 자립했다. 그는 홈리스와 노숙인은 다르다고 했다. 근로 의욕이 있는 사람이 홈리스이고 없는 사람이 노숙인이다.
그는 조금 전 1000원을 구걸하던 남자에게 단호하게 대응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까 그분은 돈이 생기면 100% 술을 먹을 거예요. 저런 행위를 ‘꼬지’라고 해요. 특히 교회에서 꼬지를 많이 하는데 하루 돌아다니면 5만원은 쉽게 손에 쥘 수 있어요. 구걸한 돈은 술과 도박으로 탕진하므로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도와주면 안 돼요.”
홈리스 월드컵은 2003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집 없는 이들이 모여 실내 축구경기인 풋살로 승부를 가린다. 4인제로 1명의 골키퍼와 3명의 필드플레이어로 구성한다. 3명 중 1명은 반드시 상대 진영에 있어야 한다. 공격은 3명, 수비는 2명이므로 골이 많이 나 박진감이 넘친다. 몸싸움과 벽 이용이 가능해 하키와 결합된 축구 느낌이 난다.
지난해에는 운동이 부족해 평소 일주일에 한번 축구를 해오던 홈리스들과 출전했지만 올해는 서울시 협조로 5월에 선발전을 가졌다. 홈리스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선발전에는 48명이 지원했다. 선발기준은 얼마나 연습에 꾸준히 참석할 수 있는가를 따지는 성실성, 자립의지, 실력, 협동성 등이다. 또 홈리스들의 가능성을 사회에 알려 사회 인식을 바꾸기 위한 것이므로 언론 노출도 가능해야 한다. 1차에서 15명, 2차에서 8명으로 추렸다. 4개월간 일주일에 2번, 2시간씩 훈련하다 대회 한달을 앞두고 3시간씩 했다.
홈리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안 좋아 기업의 후원은 받을 수 없었다. 대한축구협회에서 유니폼과 장비를, 주최 측에서 잠자리와 식사를, 익명의 후원자가 훈련비와 항공료를 지원해 줬다. 훈련은 서울시의 협조로 영등포공원 풋살경기장에서 이뤄졌다.
이번 대회에서는 전패를 하다 유일하게 일본을 3대 0으로 이겼다. 그러나 선수들은 우리나라와 선수 구성이 비슷한 일본을 이겨 오히려 미안해했다.
“다른 나라 선수는 말 그대로 집이 없고 난민보호시설에 있거나 마약청소년 출신의 젊은 빈민들이라 선수층이 두터워요. 베베 선수가 포르투갈의 홈리스 월드컵 대표로 훈련받다 맨유와 계약한 것만 봐도 30, 40대로 구성된 우리나라가 적수가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들은 내년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어떤 것이 더 좋은 ‘그림’이고 어떤 선수들을 데려가는 게 더 좋은 방향인지 고민하고 있다. 팀 구성에서 변치 않는 한 가지 원칙은 홈리스 월드컵을 통해 홈리스의 가능성을 사회에 보여준다는 큰 패러다임을 지킨다는 것이다.
홈리스의 희망 ‘빅이슈’
조씨의 전공은 철학이다. 관심 있는 분야가 철학, 심리, 체육이다.
“세 가지가 어울리기 힘들어 보이죠. 하나님께서 이 모습으로 태어나게 하신 이유에 합당한 일, 세 가지가 어울리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영혼이 망가지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자활시키는 일에 사명이 있음을 깨달았어요.”
그는 홈리스를 돕는 일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달란트이며 사명임을 알았다고 했다.
2남3녀 중 넷째로 모태신앙인 그는 외할머니, 어머니로부터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어릴 때는 왜소하고 몸이 약해 열등감 속에 살았다. 지금은 1m78의 호남형이지만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작았다.
“버스를 타도 저의 못난 모습을 사람들이 볼까봐 뒤도 못 돌아봤어요. 남들과 비교하기 시작했고 형제 중에 공부를 제일 못했어요. 가장 효율성도 없었어요. 생각은 많은데 자꾸 내면으로 파고들어가 철학을 공부했어요.”
그가 하나님을 만난 건 중 2때다. 인간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그때부터 하나님을 좇았다. 모든 것을 알고 다 받아들여줄 수 있는 절대자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다. 마태복음 6장 34절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란 말씀을 듣는 순간 평안이 왔다. 생활에 담대함이 생겼다. 말씀을 사모하며 매일 공부하기 전 1시간씩 말씀을 읽었다.
대학 졸업 후 더 좋은 조건의 직장에 갈 수도 있었지만 빅이슈코리아로 진로를 결정했다. 그는 ‘빅판 코디네이터’다. 빅판 코디네이터는 ‘빅이슈 판매원(빅판)’의 판매장소 관할인 지하철, 구청의 가로정비과, 주변 가게들에 협조를 구하러 다닌다. 빅판이 고비가 있을 때마다 상담을 해주거나 빅이슈가 잘 팔리지 않을 경우 그 이유를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
빅판은 빅이슈를 팔아 그 수익금의 일부로 자립을 하게 된다. 빅이슈는 1991년 영국에서 처음 발간된 잡지로 ‘세계길거리잡지협회(INSP)’의 콘텐츠를 공유하며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빅이슈는 홈리스들이 고시원에 방을 얻고, 임대주택에 입주하게 하는 등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빅판은 일반인과 눈을 맞추며 판매하는 가운데 소통을 익히고 자신감과 사회성을 키운다.
“빅이슈가 살아야 된다는 사명감이 있어요. 빅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시고 브랜드 가치를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빅판을 후원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임을 많은 분들이 함께 느끼길 바랍니다.”
그는 영원한 빅이슈맨이길 바라며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손길을 기다리는 노숙인들을 찾아 나선다(02-766-1115·bigissuekr.tistory.com).
글 최영경 기자·사진 구성찬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