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답을 찾다… 800㎞ 국토순례 이창식 우리펀드서비스 대표

입력 2011-10-12 18:16


그는 추운 겨울, 혼자 떠났다. 초라하게 느껴지는 묵은 일상을 털어버리고, 새로 시작할 힘을 얻기 위해서였다.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800㎞의 국토를 29일 동안 걸었다. 도보여행이 아닌 하루치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고, 자연 속에 임재하시는 창조주를 느끼며 자신을 반성하는 순례의 길이었다.

“국토순례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에 대해 감사해야 함을 알려준 인생의 큰 선물이었습니다. 자연의 힘 앞에서 겸손을 배웠고, 힘들 때 타인이 주는 조그마한 정성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알았습니다. 그로 인해 어려운 이웃을 이해할 수 있는 긍휼이 생겼고, 내게 주어진 일을 전보다 더 잘 해낼 자신감을 얻었지요.”

생각은 발뒤꿈치에서 나온다

이창식(56·전 우리은행 부행장) 우리펀드서비스 대표가 국토순례를 하게 된 직접적 동기는 2005년 65세의 황안나 할머니가 23일 만에 국토 800㎞를 걸었다는 신문기사였다. 가슴이 뛰었다. 걷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반드시 기회를 만들어 떠나기로 다짐했다.

평소 그는 걷는 것은 ‘창조행위’라고 생각했다. 새벽예배를 드린 뒤 한강 둔치를 걸으면 생각이 피어올랐다. 이때 얻은 아이디어들이 직원들과 회의를 통해 상품으로 창조됐다. “걸으면 뇌가 작동해서 내면의 깊은 곳에 있는 생각들이 솟아나요. 은행상품 개발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입니다. 직원들에게 자주 걸으라고 권했지요.”

그는 국토순례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수시로 걷기 연습을 했다. 조기축구팀을 만들어 한겨울 한강 둔치에서 입김을 불어가며 땀을 흘렸고, 가장 추운 날을 택해 실전과 똑같이 15㎏의 배낭을 메고 걷는 연습을 했다. 걷기를 실행에 옮긴 것은 우리은행 부행장 직을 마지막으로 30년간의 은행생활을 마무리한 직후였다. 인생의 하프타임을 준비하고 싶었다. 가슴 속엔 진군의 북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절실한 호명에 응답하다

지난 2011년 1월 1일 새벽, 전남 해남 땅끝마을 ‘희망의 종’ 앞. 일출을 기다리며 274명의 중보기도 대상자가 적힌 수첩을 꺼내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기도했다. 새벽예배를 다녀온 아내가 목사님의 설교본문 말씀을 휴대전화 문자로 알려왔다. 말씀을 묵상하고 순례를 시작했다. 15㎏의 배낭을 메고 하루 8시간씩 걸었다. 구제역과 30년 만의 한파와 폭설로 식당을 만나기 어려워 식사를 거를 때도 있었다. 평소에 쳐다보지도 않던 김밥집, 편의점을 보면 감사기도가 절로 나왔다.

순례의 중반에 접어들자 골반의 통증과 발가락의 마비증세가 나타났다. 나약해지는 마음 때문에 몸이 지치고 다리가 후들거려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그렇게 말렸을 때 듣는 건데.’ 하지만 포기하기엔 7년간 준비해온 시간과 노력이 아까웠다.

한없는 무력감을 느끼고 포기하려는 순간 사람들이 보내주는 작은 정성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다시 길을 걸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손목을 덥석 잡고 “아니, 이 한겨울에 왜 사서 고생을 해?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히 가게”라고 하셨다. 깊은 염려가 묻어났다. 평소엔 “고맙습니다.” 한 마디로 충분했을 텐데 눈물이 왈칵 솟았다.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40:31)란 말씀을 묵상하며 길을 걸었다.

“손 한번 흔들어 주고 지나가는 운전자들, 한겨울에 조심히 가라고 격려해 주는 마을 촌로, 공기밥을 고봉으로 담고 반찬 하나 더 갖다 주시는 어머니 같은 할머니, 순례를 포기하려는 순간마다 걸려오는 격려전화 한 통, 문자 하나에 기운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이 겨울에 어떻게 임재하시는가를 보고 싶었다. 하나님의 절실한 호명을 듣길 원했다. 하나님은 한겨울의 풍광 속에 계셨다. 농어촌 마을의 지붕과 돌담 위의 포근한 햇살로, 밤새 얼어붙은 들판의 나뭇가지와 봇짐을 이고 앉은 할머니의 머리 위로 생명의 햇살로 계셨다. “창조주는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하셨어요. 수백 포기의 배추들이 흰눈에 덮인 채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광경이 마치 흰 두건을 쓴 수녀님들 같았어요. 저에겐 ‘주님만 바라보라’는 주님의 음성 같았죠.”

왜 혼자 떠나느냐고요?

사람들은 그에게 “왜 혼자 떠나느냐”고 많이 물었다. 풍광을 즐기기 위해 떠나는 단기간의 도보여행은 여러 사람과 함께 길을 나서도 상관 없지만 고난과 시련을 통한 자기 연단의 먼 순례의 길은 혼자 갈 수밖에 없다. 사람들마다 체력적 조건과 인내의 한계가 다르고 걷는 리듬과 속도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로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 홀로 불을 켜고 기도하거나 글을 써야 할 때도 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방해받거나 나로 인해 누군가에게 지장을 준다면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없지요. 혼자 있을 때 우리에게 강력함이 찾아오고 고요함 속에 있을 때 해답이 스스로 우리를 찾아옵니다.”

또 “왜 좋은 계절 놔두고 한겨울에 떠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겨울은 위험하지만 다른 계절보다 걷기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비 대신 눈이 오기에 옷과 신발이 젖지 않고,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지 않아 좋아요. 또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는 없지만 혹독한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자신을 순금처럼 연단시킬 수 있습니다.”

적당한 짐은 져야 한다

그는 15㎏의 무거운 배낭이 선물이었다는 것을 순례의 끝머리에서 알게 됐다. 배낭 무게로 발바닥, 다리, 관절, 골반 등 하체에 무리가 가고 적절한 속도를 낼 수 없었다. 길을 걸으며 등의 짐이 무겁다고 얼마나 원망했던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등의 짐은 걸을 수 있게 해준 ‘선물’이었다. 무거운 짐을 질 수 있었으므로 몸이 가열돼 어깨와 팔, 몸통과 다리가 추위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 등에 짐이 없었다면 걷던 도중 불행한 일을 당했을지도 모릅니다. 내 등에 짐이 있음으로 급하지 않게 한 걸음 한 걸음 차분히 걸을 수 있었고, 짐이 있음으로 거만하지 않게 겸손히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 걸을 수 있었습니다.”

또 그는 단조로운 평지가 걷기 힘들다며 인생에서 만나는 소소로운 고민들이 삶을 깨어 있게 만드는 이치와 같다고 했다.

아픈 청춘들이여!

그는 순례길에서 만난 이들을 통해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자연과 교감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담대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기도하며 감사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국토순례를 권한다.

“모든 이들에게 국토순례를 권하고 싶어요. 특히 인생 후반을 준비하는 사람, 취업을 준비하는 아픈 청춘들, 또 일상에서 자신의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어요.”

그가 국토순례 시에 꼭 챙겨 가라고 권하는 것은 성경과 찬송가다. 자연의 힘 앞에 연약하고 무력한 존재임을 깨닫고 누군가 의지하고 싶을 때 성경을 펴라고 말한다. “수천년 전에 살았던 성경 속 사람들도 많은 걱정거리와 좌절, 시련을 경험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했어요. 성경은 영혼의 일기였어요. 또 고난당할 때마다 위로를 주었던 말씀이었고 은혜를 받을 때 부른 찬양의 기록이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국토의 길들이 점점 쇠락해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우리나라 2차로 국도를 개발해 순례길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자전거도로나 보행로를 조성해 순례길을 만든다면 마을의 상권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인생 후반전이 시작되다

하나님께서 그를 ‘국토순례’라는 겨울광야에 보내신 이유가 있었다. 국토순례를 마친 직후인 2011년 2월, 그는 우리펀드서비스 대표직을 맡게 됐다. 펀드서비스 업무는 펀드의 기준가격을 선정하는 일이다. 증시가 끝나는 오후 3시부터 업무를 시작해 늦은 밤에야 일이 끝나 직원들이 기피하는 파트였다. 연봉은 높지만 직원들은 생활에 지쳐 힘들어했다.

“국토순례 후 자연과 사람을 대하는 제 마음이 달라졌어요. 힘들어하는 직원들의 손짓, 표정을 바라보며 애통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 직원들과 나눈 대화를 기록하고 직원 한명 한명을 위해 중보기도를 합니다. 요즘 직원들의 표정이 달라지고, 업무 분위기도 좋다는 평을 받습니다.”

현재 그는 서울 소망교회에 출석하며 6년째 차량봉사를 하고 있다. 인생 후반을 활기차게 열어젖힌 그의 얼굴 가득 편안함과 행복감이 번져나왔다.

글 이지현 기자·사진 곽경근 선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