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은행 돈 가뭄 심화… 신용등급 무더기 강등에 EU ‘규제 강화’까지 겹쳐
입력 2011-10-12 21:48
유럽 은행들의 자금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로 신용등급 강등이 잇따르고 자본 확충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상황에서 유럽연합(EU)이 자본 규제 강화 방안까지 꺼내들었다. 돌파구로 인식돼온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증액안마저 슬로바키아의 반대로 벽에 부닥쳐 유로존 위기는 갈수록 꼬여가고 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은행들은 지난 주말에 이어 무더기로 신용등급 강등 폭탄을 맞았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11일(현지시간) 산탄데르 등 스페인 은행 10곳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씩 하향 조정했다. 은행 부실자산을 원인으로 꼽았다. 피치도 스페인 은행 6곳과 이탈리아 은행 3곳에 대한 등급을 강등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EU 산하 유럽은행감독청(EBA)이 12일 규제안을 발표하면서 유럽 은행들은 가뜩이나 말라가고 있는 자금난에 시달리게 됐다. 규제안에는 유럽 은행의 의무 기본자본율을 9%로 높이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이 기준을 충족해야 자본 확충을 받을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예상보다 강화된 기준을 향후 6∼9개월 동안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은행들에게는 쉽지 않은 과제”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슬로바키아 의회는 11일(현지시간) EFSF 증액안을 부결시켰다. 승인을 위해 필요한 과반(76석)에 21표 부족한 55표의 찬성을 얻는 데 그쳤다. 증액안은 16개국에서 통과해 슬로바키아만 남겨두고 있다. 17개국 모두 승인을 해야만 EFSF를 통한 그리스 구제금융, 은행 지원 등이 가능하다.
유로존 중 가장 가난한 국가인 슬로바키아에서는 ‘부자 나라의 재정 파탄 문제를 우리 세금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반대여론이 강한 상황이다. 현재 2500억 유로인 EFSF 규모를 4400억 유로까지 증액하려면 슬로바키아는 분담금을 43억7100만 유로에서 77억2700만 유로로 늘려야 한다.
다만 정부에 대한 신임투표와 이를 연계시켰던 이베타 라디코바 총리가 이날 불신임을 받아 더 이상 EFSF 확대안을 반대할 이유가 없어져 아직 증액안 통과 가능성은 남아있는 상태다. 슬로바키아 의회는 이르면 13∼14일 재투표를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