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환의 삶과 신앙]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입력 2011-10-12 19:33


성지순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통곡의 벽을 방문한 일이었다. 그곳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그 벽에서 자신의 아픔과 한을 터트리며 슬피 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성벽에 머리를 대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사람들 모습에서 가슴 찡한 애처로움을 느낀다. 무슨 사연들이 있었기에 저리 큰 슬픔을 토해낼까 하는 생각과 함께. 더불어 많은 사람의 시선이 머무는 공공장소에 나와서 우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후련함일까? 수치심일까? 그들이 느꼈을 감정이 어떠하든지 저렇게 울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저들은 건강하다는 진한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스라엘이 목숨을 다해 지키려 했던 것은 눈에 보이는 약속의 땅이 아니라 조상들이 울었고 자신들이 언제고 울 수 있는 이 공간이 아닌가 싶었다.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희로애락의 감정이 있다. 정상적인 사람들이란 대체로 인생을 살면서 이러한 감정의 변화들을 느끼며 사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때로 우리 주변에는 이런 자연스러운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사람을 심리적 기능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즉 인체가 열을 내지 못하면 땀을 내지 못하고 결국은 체온 조절에 실패해 병에 걸리는 것처럼 우리 인간도 자연스러운 감정들을 제대로 제 때에 표현해 내지 못하고 충분히 느끼지 못하면 마음의 병에 걸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심리상담의 가장 기본적 과제는 특정한 문제에 딱 들어맞는 해답을 바로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격리되고 분리된 사람들에게 자신의 참 감정을 충분히 ‘느끼도록’ 여유 있는 삶의 공간을 주는 일이라 하겠다.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면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는 삶을 살게 된다. 슬픈 일을 만나 슬픔을 제대로 느끼고 표현하지 못하고 지나가면 마음의 병으로 남게 된다. 따라서 울어야 할 때는 체면을 차릴 것이 아니라 충분히 울 수 있어야 건강한 사람이라 하겠다. 우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이다. 분노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분노의 감정을 지나치게 억누르는 사람은 반드시 마음의 병으로 이어지거나(화병) 혹은 어느 순간 억제할 수 없는 힘으로 터져 나와 자신과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폭력)를 주기도 한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에 주인이 되지 못할까. 왜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우는 일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닐까. 먼저 우리들의 감정도 ‘학습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오랜 세월 가정에서 부모들의 관계 맺는 방식과 감정 표현의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아이들은 희로애락을 어떤 타이밍에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배운다. 이렇게 학습된 우리들의 감정은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안에 우리 감정을 표출하는 전달 방식으로 자리잡게 되고 이 도식들을 가지고 우리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사는 것이다.

“남자는 울면 안 돼!”, “여자는 자신의 화를 함부로 표현하면 안 돼!”라는 메시지를 직간접으로 보고 배우며 자란 아이들은 그들의 참 감정과 점차 분리되어 가는 것이다. 때문에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자신의 감정에 참 주인이 되지 못하고 감정에 끌려 다니는 노예의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참 자아가 주인이 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거짓 자아가 주인이 되어 사는 ‘거짓의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거짓의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에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는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그 대가란 때때로 분출되는 자신의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의 힘에 유아적으로 무기력해지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가까운 인간관계를 의심하거나 불안해하거나 혹은 파괴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어떻게 우리는 이 감정의 포로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먼저 자신의 감정을 ‘지금 여기에서’ 솔직히 표현하는 일이 괜찮다는 확신과 그 체험들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되는 길은 거창한 철학의 명제가 아니라 가장 가까이 있는 자신의 감정에 주인이 되는 길로부터 시작된다. 이 가을, 떨어지는 모든 것을 보며 슬픔을 느껴보시라.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정석환

■ 정석환 교수는 이야기심리학을 통해 보는 성인 발달과 목회상담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현재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장 겸 연합신학대학원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