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교회-경남 함양군 성우성서교회] 가을 지리산 자락… 아픈 영혼을 품다

입력 2011-10-12 19:27


가을에 지리산 자락을 가 봤는가. 지리산 자락에서 가을을 만나 봤는가.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다. 가을 속 지리산 자락의 한 교회를 찾았다. 경남 함양군 수동면 하교리 167의2번지 성우성서교회(055-962-7911). 절정으로 치닫는 가을을 바탕색 삼아 서 있는 교회는 주위 풍경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곳에는 소박하고 진실한 50여 성도들이 있었다. 천국을 소망하며 하나님을 배워가는 이들이다. 저마다 아픈 사연들을 갖고 있지만 하나님의 위로 속에서 쉼과 안식을 누리고 있었다. 치유와 회복을 체험하고 있었다. 주님이 알려주신 교회의 존재가치를 잘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지리산, 가을 그리고 교회

가을이 오나 했는데, 가을은 이미 남녘 산골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다. 삼라만상이 가을의 멋을 한창 즐기고 있다. 산과 들은 가을옷을 갈아입기에 바쁘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초록일색이던 들녘은 온통 황금물결이다. 산도 마찬가지다. 부지런히 노랗고 붉은색 단장을 하고 있다. 물은 또 어떤가. 파란 하늘을 닮은 가을빛을 진하게 우려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명산 지리산 아래다. 지리산의 어느 곳인들 절경 아닌 곳이 있으랴만 경남 함양 쪽의 산수도 어느 곳 못지않다. 지리산 제1문으로 이어지는 오도재에서부터 지리산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많다. 곳곳의 청정계곡이 사람들의 발길과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떤 여행길이든 부푼 마음을 안고 나서게 마련이지만 이번엔 유난히 들떴다. 가을과 지리산의 조합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서울에서 내려가다 대전에서 통영∼대전 고속도로로 바꿔 탄다. 이어 함양휴게소 지나 88고속도로로 다시 바꿔 함양IC로 빠져나가면 된다. IC를 나간 뒤 거창 방향 1004번 지방도(수남로)로 10분 남짓 가면 길 왼편으로 자그마한 성우성서교회 팻말과 함께 진입로가 보인다. 시멘트로 포장된 좁은 진입로로 올라서면 금세 숲에 가려져 있던 교회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림처럼 예쁘다.

교회 마당에 들어서면 눈길은 저절로 아래쪽으로 향한다. 교회 왼쪽과 멀리 맞은편 산 아래, 두 마을이 정겹게 마주보고 앉아 있다. 두 마을 합쳐 잘해야 50여 가구가 될까. 눈길을 거두어 교회당 주변을 훑어본다. 앞쪽의 감나무, 뒤쪽의 밤나무들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교회당 주변에 빽빽이 들어선 산죽(山竹)이 진정 자연 속에 있음을 일깨워준다.

교회 주변 경관을 즐기는 사이 어느 새 고태식(44) 목사와 왕호선(41) 사모가 방문객을 맞는다. 고 목사는 구면이다. 4년 전 헤브론축구선교회의 중국 옌볜 지역 선교활동 때 동행했던 적이 있다. 푸짐한 모습에 여유로운 웃음이 예나 똑같다.

고 목사의 안내로 교회 주변 여기저기를 다시 살핀다. 다소 투박하고 엉성한 듯한 몇 그루 분재가 교회당 옆에 한 줄로 도열해 있다. 고 목사가 직접 만든 작품이란다. 진입로를 따라 길 바깥에 일렬로 심겨진 담백한 모습의 하얀 꽃이 새롭게 눈에 띈다. 이름을 물어보니 그냥 예쁜 꽃이란다. 바람결에 어디선가 날아온 향내가 코를 자극한다. 무슨 냄새냐고 물으니 지리산 자락의 가을 냄새란다.

쉼, 회복 그리고 교회

교회당 안. 아늑하면서 성스러운 분위기에 절로 매무새를 챙긴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교회랍니다.” 상투적인 표현 같은데 고 목사의 말투에 뼈가 있는 듯하다. 말꼬리를 잡자 역시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성도들이 저마다 상처 많은 가슴을 안고 있었다. 그들이 쉼과 평강, 치유와 회복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있었다.

서두식(57) 권사. 새벽기도를 네 시간씩 하는 기도의 일꾼이다. 많은 빚을 남기고 일찍 하늘나라로 떠난 남편을 원망할 새도 없이 많은 일을 감당해야 했다. 그러면서 가족뿐 아니라 목사와 성도들을 위해 매일 폭포수 같은 눈물을 쏟고 있다. 덕분에 돈 벌러 도회지로 떠났던 아들 임재진 집사가 몇 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소 키우고 농사 지으면서 가정과 교회의 큰 일꾼 노릇을 하고 있다.

노춘자(50) 집사. 결핵 후유증으로 인한 가냘픈 몸으로 하나님 찬양에 온힘을 다한다. 역시 일찍 남편을 잃고 외지로 나갔다가 갖은 고생을 한 뒤 귀향해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고자 한다. 경남 삼천포에서 인근 마을로 시집 온 이정희(47) 집사도 많은 갈등을 극복하고 찬양에 앞장서고 있다. 가족 5명이 찬양대원으로 활동한다.

전효선(50) 집사는 함양읍내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전도에 더 열심이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만난 하나님이 너무 고마워 틈만 나면 미용기구를 들고 요양원 등으로 달려간다. 김점님(74) 집사는 꽃을 무척 좋아해 ‘꽃집사’로 불린다. 남모를 아픔을 가슴에 담고 있지만 교회 미화를 책임지며 언제나 꽃처럼 환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교회에는 성도들의 간증이 꿈틀대고 있다. 하지만 고 목사 부부의 가슴에 아직도 선연한 자국을 가진 간증이 압권이다. 고 목사는 지난해 2월 무겁고 지친 걸음으로 내려와 이 교회에 부임했다. 인천 예담교회를 개척해 축구선교 군선교 등을 활발히 펼치며 한창 일하던 중 열세 살짜리 딸 예진이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3년 넘게 가슴앓이를 하다 낙향했다.

어린 예진이의 왼쪽 어깨에 혹이 발견된 2005년 11월부터 숨을 거둔 2007년 3월까지의 과정은 하나님의 가혹한 연단이었다. 연골암 판정, 수술과 항암치료, 오빠들(성산, 신명)의 조혈모세포 이식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표현할 수 없이 힘들었다. 경제난에다 병상을 줄곧 지킨 엄마(왕 사모)의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많은 이들을 울렸다.

하지만 그 과정이 역설적이게도 고 목사 부부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분은 고 목사 부부를 다시 만나주셨다. “내가 너희를 안다. 너희의 아픔과 슬픔을 잘 안다. 이제 그만 눈물을 거두고 내 일을 해라.” 그러고는 고향의 이 교회를 예비해두셨다. 고 목사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목사가 되자는 다짐을 새로이 하고 부임했다.

오소서! 모두 준비되었나이다

성우성서교회는 고 목사 부임 후 활력을 더해가고 있다. 10년 넘게 한 명도 전도되지 않던 교회에 학생과 젊은이들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고 목사가 노력하는 축구선교와 군선교 덕분이다.

특히 고 목사의 ‘철학 있는’ 축구선교는 탄력을 얻고 있다. 그는 항상 십자가 정신의 축구를 강조한다. 자신을 죽여 팀을 살리는, 이른바 희생의 축구다. 그는 축구공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축구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는 말을 습관처럼 한다.

고 목사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많은 걸 느끼게 된다. 그는 나이에 비해 참 많은 경험을 하고, 깊은 내공을 쌓은 사람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영향으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해 중학교 2학년 때 성령 체험을 한 데 이어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받는 등으로 전개되는 그의 삶은 웬만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교회를 떠나야 할 시간. 사택 2층 게스트하우스에서 쉬고 가라는 말에 잠시 망설이다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인근 지역을 찬찬히 더듬기로 했다.

교회에서 함양읍 쪽으로 조금만 가면 상림이 나온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 된 인공 숲이란다. 9세기 말 함양부사로 부임한 고운 최치원 선생이 조성했다고 한다. 1000년이 넘는 숲이어서인지 각양각색의 나무들이 약 2㎞의 둑을 따라 빽빽이 들어서 있다. 숲 바깥은 단풍인데 안쪽은 아직도 녹음이다. 상큼하면서도 달큰한 숲속 공기의 맛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상림의 끝에 있는 물레방아를 보고 나서 둑방길을 걸어보는 재미도 괜찮다.

내친 김에 마천면 쪽으로 방향을 잡아 오도재까지 향한다. S자 형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힘겹게 올라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광경이 멋지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어 있는 길이다. 길 양쪽으로 피어 있는 가을 들꽃을 보기 위해 몇 번이나 차를 세우게 된다. 산등성이 곳곳을 노랗게 장식한 다랑논의 풍경이 이색적이다. 때마침, 아니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운무가 지리산 등줄기를 걸친다. 멋지다,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함양을 벗어나는 발걸음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성우성서교회를 찾아 떠난 여행길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풍경도 아름다웠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게 교회였다. 돌아오는 내내 교회당 앞에 내걸린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눅 14:17)’라는 글귀의 의미를 생각했다. 세상에서 지치고 고단한 이들, 영적으로 방황하는 이들이 와서 주님의 능력으로 쉼과 안식을 얻고 치유와 회복을 맛보며 새 힘을 얻으라는 말이라고 나름대로 정리했다. 참 멋진 여행이었다.

목사님은 ‘진돗개 전문가’ 군선교 등 목회·사역 도구로 활용

목회자와 진돗개.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고태식 목사는 진돗개를 사역의 방편이자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진돗개 전문가로서 진돗개를 목회와 전도 등 하나님의 일에 다양하게 써먹고 있다.

고 목사가 진돗개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000년대 초반 인천 만수동에 예담교회를 개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개척교회 초창기의 시름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대한민국국견협회를 통해 진돗개 한 마리를 구입하게 된 것이다.

진돗개를 들여오자마자 그는 금세 진돗개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어릴 때부터 남달리 개를 좋아하긴 했지만 예리한 눈 모양과 날렵한 몸매의 외양뿐 아니라 동물로 보기 어려운 영리한 두뇌, 주인에 대한 충성심에 반했다. 진돗개와 함께 생활하고 진돗개를 연구하면서 그는 결국 진돗개 전문가로 인정받아 협회의 진돗개 심사위원까지 됐다.

그러자 대외적인 교류의 폭이 한층 넓어졌다. 먼저 그는 협회 우무종 총재를 전도했다. 그리고 인천 인근 군부대 지휘관들을 만나 교제하게 되면서 군선교의 기틀을 마련했다. 성우성서교회로 옮겨가서도 인근 거창의 군부대에 진돗개 한 마리를 전하면서 군선교의 통로를 열었다.

요즘도 진돗개를 매개로 많은 이들과 만나는 고 목사는 “미물을 통해서도 자신의 뜻을 드러내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새삼 깨닫는다”면서 활짝 웃었다. 대한민국국견협회는 천연기념물 53호인 진돗개의 순혈을 보존하고 육성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함양=글 정수익 선임기자·사진 김지훈 기자 sag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