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락 駐러 대사 “2011년 두차례 北과 대화서 비핵화 조치 가능성 봤다”
입력 2011-10-11 22:02
“1차 남북 비핵화회담이 3개월 정도 빨랐다면 연내 3차 회담까지 갖고 (비핵화 사전조치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도 손에 쥘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2009년 3월부터 지난 5일까지 2년7개월 동안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겸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위성락(57) 신임 주(駐)러시아 대사는 11일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간의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위 대사는 “지난 7월과 9월 두 차례 (북한과) 대화하면서 북측이 비핵화 사전조치를 이행하려는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다. 그가 이끌어낸 비핵화 회담은 북한의 천안함·연평도 도발 이후 남북 간에 처음 열린 의미 있는 대화로 평가됐다. 위 대사도 “처음에는 남북대화에 ‘북한이 응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제는 남북대화의 필요성이 남북은 물론, 미·일·중·러 등 6자 내부에 분명히 각인됐다”고 자평했다. 북한은 첫 회담에서 우리가 제안한 ‘그랜드바긴’(북핵 폐기와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경제지원 등을 일괄타결)에 대한 그동안의 오해를 풀었고, 두 번째 대화에서는 그랜드바긴의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었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북한은 그랜드바긴을 남북 간 거래로만 이해한 듯하다”면서 “여기엔 남북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러시아 등 6자 간의 거래가 한 묶음으로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그랜드바긴에 유연한 반응을 보인 만큼 앞으로 한·미가 이를 잘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달 내 열릴 2차 북·미회담 전망에 대해선 “북한이 유연한 입장을 갖고 회담에 나설 것으로 보는데 미국이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2003년 6자회담이 시작된 이래 최장수 수석대표를 지냈지만 정작 재임 중엔 6자회담이 열리지 못했다. 이에 대한 아쉬움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위 대사는 “그런 건 없다”고 했다. “각본이 잘 짜인 6자회담이라는 ‘쇼 무대’ 뒤에는 각본 없이 진행해 온 무수한 협상이 있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6·25 한국전쟁 직후 2년간 계속된 휴전회담은 회담장 밖에서 남북 간에 벌어진 수차례 전투와 동시에 진행된 겁니다. 그 회담에서 ‘전쟁 그만하자’고 한 번에 거래한 게 아니라 여러 번의 전투에서 이기고 지기를 반복하며 전쟁 종식이라는 결론이 난 겁니다.”
위 대사는 휴전회담을 6자회담에, 각개 전투를 남북, 북·미 등 다양한 양자협상에 비유했다. 그는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기 위해선 그들의 ‘생명 줄’인 중국을 잘 활용해야 된다”고 말했다. 이어 권력승계를 앞둔 북한 내부의 변화 가능성이 북핵 문제의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피력했다.
6자회담 대표 시절 일본·러시아에 공을 들인 뒷얘기도 들려줬다. 그는 “때로 미국과 이견이 생기면 일본에 부탁해 미국을 간접 설득했고, 러시아도 중국보다 우리 측과 보조를 맞출 수 있도록 관계 진전에 애를 썼다”고 했다.
외교부 내 ‘러시아통(通)’이기도 한 위 대사는 다음 달 초 모스크바로 떠난다. “가기 전에 뭘 하며 지낼 거냐”고 물었더니 그는 화가인 부인 김상학(56)씨의 화실이 있는 경기도 양평으로 가 “안개 낀 한강변을 산책하며 차근차근 이임 준비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