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姓社, 姓資도 아닌 姓特

입력 2011-10-11 17:54


“성이 사씨(姓社, 사회주의)인가, 자씨(姓資, 자본주의)인가.”

지난 주말 방문했던 지구상에서 가장 잘 사는 농촌이라는 장쑤성 장인시 화시(華西)촌(본보 10월 10일자 15면). ‘농촌에 있는 도시’ 화시촌은 마을 전체가 하나의 재벌 그룹을 이루고 있었다. 그곳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도대체 이게 사회주의인지, 자본주의인지 헷갈린다는 질문이 나왔다.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는 중요치 않다. 실사구시에 따라 화시촌 발전을 이끌었을 뿐이다. 이게 바로 중국식 사회주의(中國特色社會主義)다.” 1960년대 초 ‘깡촌’에서 공장을 세워 돈을 벌자고 농민들을 설득하고 다녔던 우런바오(吳仁寶·83) ‘라오수지(老書記)’의 명쾌한 대답이었다. 그는 당시 공산당 화시촌지부 서기였다.

“가난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소수가 부자가 됐다고 그 역시 사회주의는 아니다.” 그는 실천가였을 뿐 아니라 논리도 정연했다. 내 눈에는 그가 덩샤오핑(鄧小平)보다 먼저 개혁·개방을 주장한 선각자로 비쳤다. 중국 농촌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가 같은 ‘바오(寶)’자를 쓰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만큼이나 잘 알려져 있다고 했다.

중국의 거침없는 성장을 놓고 식자(識者)들은 나름대로 진단을 내놓는다. 선진자본주의의 한계냐, 민주주의의 쇠퇴냐를 거론하다가 ‘중국식 모델’을 말하기도 한다. 미국도, 일본도, 유럽도 모두 시들시들하는 판에 중국만 독야청청하니 그럴 만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정치 체제가 시장경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 중국식 사회주의를 말하지만 여기에도 어두운 면은 적지 않다. 뿌리 깊은 부패에다 빈부격차는 미래에 자칫 체제를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자본주의의 단점을 똑같이 안고 있는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도 거리낌 없이 ‘동지’라고 부르는 중국인들이지만 권위에 대한 굽실거림 또한 여전하다. 봉건왕조시대의 유산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이 제일 뛰어난 ‘경제 성적표’를 자랑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런 만큼 중국 체제의 어떤 측면이 이 같은 결과를 가져왔는지 분석하는 건 의미가 있다. 우선 장점이 잘 발휘된 형태의 집단지도체제와 치밀한 인재 양성시스템에 주목하고 싶다. 다당제가 아닌 공산당 일당제 아래의 정치적 안정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볼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정치’는 바로 이러한 토양에서 가능했다. 집단지도체제란 것도 권력 투쟁이나 무책임 쪽으로 가게 되면 엄청난 폐해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토론을 통한 목표 설정과 책임 공유, 역할 분담에 의한 효율성 제고 등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정치 엘리트 양성 과정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될성부른 나무’라고 해서 중앙 무대에서 수직상승하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의 예는 진부하다. 중앙과 지방을 오가면서 숱한 경쟁을 거치거나 지방에서 잔뼈가 굵은 다음 비로소 중앙에 등장하는 것이다. 행정 능력은 물론 자생력, 청렴도 등을 테스트 받는 기간이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긴 셈이다.

공산당 일당 지배는 서방에서 종종 문제 삼아왔지만 어떤 형태의 정부를 가질지는 중국인 자신이 결정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으니 굳이 정치 제도를 바꿀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결국 성특(姓特), 즉 ‘중국특색사회주의’는 제도뿐 아니라 이를 운영하는 사람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우런바오나 덩샤오핑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의 화시촌이나 중국이 있었을까.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