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광야의 소리

입력 2011-10-11 20:48


마태복음 3장 2∼12절, 시편 109편 11절

외형은 그럴 듯하나 속은 다른 것이 사이비인 것처럼 축복 비슷하나 축복이 아닌 것은 사이비 축복이다. 축복이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소득은 무엇이든지 축복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소유자를 복되게 해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자손이 아니었다. 자기 임의로 낳은 억지의 소생이었다.

결과적으로 그와 그의 후손에게 축복이 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조급한 생각으로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을 소유하려 하지 말자.

주실 때까지 기다릴 것이요, 기다려도 주시지 않을 때는 그대로가 좋다. 불로소득은 결코 소득이 아니다. 수고 없는 소득은 횡재이지 축복이라 할 수 없다. 사람이 행운만을 바라고 살면 신앙적으로는 이마에 땀 흘려 먹고 살라 하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고, 사회적으로는 나태와 부패가 범람하게 될 것이다. 가정적으로는 쉽게 들어온 재물이 쉽게 나가므로 더 큰 파탄을 초래하게 된다. 수고 없는 소득은 불의요, 소득 없는 풍요는 협잡이다. 불의와 협잡이 축복이 될 수 없는 것이거늘 오늘의 교회는 이 사이비 축복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부정소득은 결코 축복이 아니다. 무슨 짓을 해서든지 소득을 증대시켜야 된다는 것은 협잡꾼의 철학일지언정 성도의 생활 자세라 할 수 없다. 부하게 산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르게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삶이 복이 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밀수와 탈세와 횡령과 폭리와 착취로 치부하고 그것을 축복이라 착각하여 거만을 떠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그러한 자의 고루거각에 출입하여 고급차나 얻어 마시는 재미에, 부정에 부채질이나 하는 교역자가 되어서도 안 되겠다. 만일 내 집에 부정소득이 들어 올 경우 첫째, 주의 성령이 내 집에서 떠나실 것이다. 둘째, 부정소득과 함께 사회의 비난과 저주가 붙어올 것이다. 셋째, 그로 인해 내 자손들이 불행하게 될 것이다.

이를 어찌 축복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하기에 세례 요한은 이러한 사이비 축복에 현혹되지 말라고 외쳤던 것이다. 남의 것을 착취했거나 남보다 더 많이 소유하여 자신을 안락케 한 자는 당장 그 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혹은 착취당한 자들에게 갚아주라고 소리 높여 외쳤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정의 혹은 공의의 선포다. 정의 혹은 공의는 추상같이 날카롭고 매서운 것이다. 거기엔 절충이나 타협이 있을 수 없다.

세례 요한은 사기, 착취, 허위 등의 죄악만이 아니라 정치악, 사회악도 가차 없이 책망했다. 이 하나님의 정의가 바로 설 때 민족의 앞날과 미래의 희망을 보았던 것이다. 이 희망의 소리, 정의와 심판의 소리가 우리 사회와 나의 영혼 안에 깊이 들려와야 한다. IT산업에 효시가 된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다. 그가 많은 것을 남기고 갔지만 아쉬운 것은 그가 유산을 나누는 데는 재산 규모에 비해 인색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이비 축복에 현혹되지 말고 진정한 복의 의미를 바로 알고 복된 길로 행하는 성도가 돼야 한다.

이선규 목사 서울 금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