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철희 (13) 보이지 않는 손이 보내준 ‘중고 컴퓨터 150대’
입력 2011-10-11 17:59
미국 본부에서 훈련을 받고 있을 때 중고 컴퓨터 매매업을 하는 집사님 한 분을 만났다. 그는 “선교지에서 혹시 컴퓨터가 필요하시다면 언제라도 연락 주십시오”라고 했다. 그때는 그저 고맙다고 하면서도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선교지에 와보니 현지 교회들이 컴퓨터 몇 대만 있다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전도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겠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집사님이 떠올랐다.
“집사님, 전에 컴퓨터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아직 유효합니까?” 집사님으로부터 즉시 답변이 왔다. “예, 한 달 내에 데스크톱 적재한 컨테이너 한 대(컴퓨터 150대 선적)를 보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운임 부담은 어렵다고 했다. 운임은 한화로 700여만원 정도 들었다. 막상 대답을 듣고 보니 걱정이 됐다. 운임도 문제지만 통관 절차도 쉽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 말로는 뇌물 없이 무관세로 통과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선교사가 뇌물을 줄 수는 없지 않은가!
공연히 일을 벌였다가 난처한 일만 생길 것 같아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면 힘들어도 해야 하는 게 선교사가 아니던가. 우리 부부는 하나님 뜻을 묻기로 했다. “하나님, 컴퓨터를 이곳에 보내주시는 것이 주님 뜻이라면 운송 경비를 책임져 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 뜻으로 알고 추진하겠습니다.”
보름이 지났을 때 그 집사님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우리가 운임 때문에 망설이는 줄 알고 그 절반을 대시겠다고 했다.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생각하기를, ‘그렇다면 절반은 내가 대어야 하겠구나’ 했다. 그런데 아내는 생각이 달랐다. “하나님의 뜻이면 전액을 다 해결해 주시지 절반만 해 주시겠어요?” 그 말도 옳았다.
나는 WEC선교회의 규칙에 따라 어느 누구에게도 재정적 필요를 말하지도 요청하지도 않았다. 다만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2주 후 또 하나의 이메일이 당도했다. 뉴저지에 있는 찬양교회(허봉기 목사 시무)가 그 집사님 말을 듣고 교회에서 운임 전액을 대겠다는 소식이었다. 이제는 꼼짝없이 하나님 뜻으로 받아들이고 컴퓨터를 들여오는 일을 추진해야 했다.
컴퓨터를 받기 위한 모든 통관 절차에 들어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신실한 세관원을 만났는데 모든 절차를 솔선해 무관세로 통과하도록 힘써주었고 혹시 다른 부서에서 어려움을 겪을까 봐 그것까지도 참견해 주었다. 통관 수속비용 외에는 한 푼 뇌물 없이 컴퓨터를 들여올 수 있었다.
그 세관원이 너무 고마워 나중에 저녁식사에 초대했는데 놀라운 제안을 했다. 수도 외곽 빈민 지역이 있는데, 그곳에는 정부에서 쓰던 낡은 빌딩이 있다고 했다. 이를 장기 무상으로 빌려줄 테니 학습센터를 하나 세워달라는 것이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컴퓨터와 영어, 한국어, 중국어 등을 가르쳐주면 좋겠다는 제의였다. 그것은 정말 우리 팀이 원했던 일이기도 했다.
컴퓨터를 현지 교회와 신학교, 시골학교, 고아원 등에 골고루 나눠주면서 우리는 많은 간증을 들었다. 사람들이 컴퓨터를 위해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응답하신 것임을 알았다. 이 일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 일은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고백했다. 나는 무얼 했는가 생각해 보니 그저 하나님 나라 택배꾼 노릇을 한 것밖에는 없었다. 정말 선교는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었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