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 “규제강화” 칼 빼는데… 고빈도매매 활성화 방침 논란
입력 2011-10-11 01:22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가 고성능 컴퓨터를 통한 고빈도매매(HFT·High Frequency Trading)를 증시 변동성의 주범으로 규정짓고 규제 강화를 천명했지만(본보 10월 10일자 1면 보도) 한국거래소는 오히려 고빈도매매에 맞는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거래소는 그간 일반 투자자 피해 등을 우려해 고빈도매매를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았지만 다른 세계 거래소들과의 속도 경쟁에서 더 이상 뒤처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사실상 단기 매매를 부추긴다는 점, 투자자 간 형평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점 등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거래소 주식매매제도 관계자는 10일 “고빈도매매를 활용하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많아지는 점에 대비해 2013년 9월을 목표로 안정적 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빈도매매란 컴퓨터 알고리즘에 따라 주식 매매가 자동으로 수행되는 것으로, 짧은 시간 내에 대량의 주문·주문취소·주문변경·체결이 거듭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한번에 얻는 이익은 미세하지만 주문과 체결을 무한정 반복해 거래량을 늘리고 큰 이익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매매 기법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고빈도매매는 이미 미국에서는 전체 주식시장의 50~70%, 유럽에서는 40~50%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파생시장에서만 일부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뿐 주식시장에서 고빈도매매 비중은 아직 1%에도 못 미친다. 거래소는 그간 고빈도매매에 대한 일반 투자자들의 여론이 나쁜 점을 고려, 시스템 구축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 왔다. 지난해 5월 6일 미국 뉴욕 증시에서 발생한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짧은 시간에 주식시세가 급락하는 현상)가 대표적인 부작용의 사례다. 당시 다우지수는 불과 20분 만에 998.5포인트(9.2%) 급락했고, 전문가들은 급락의 원인으로 고빈도매매를 지목했다.
하지만 거래소도 결국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 국내외의 고빈도매매 투자자들을 유치할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 관계자는 “잔디구장에서 공을 차는(고빈도매매를 활용한) 투자자들이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데 비해 우리 구장은 아직 자갈밭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학계나 업계에서도 고빈도매매의 부작용보다는 순기능에 점차 무게를 싣고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선임연구원 출신인 로렌스 해리스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금융학 교수는 최근 “고빈도매매는 시장을 키울 수 있고 속도와 거래비용을 단축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고빈도매매는 거래비용 감소 및 수익률 변동성 감소 측면에서 시장 품질을 개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고빈도매매가 자본시장의 장기투자 문화에 적합하지 않고, 정보가 상대적으로 느린 기관 및 일반 개인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해결할 숙제로 남아 있다. 이에 대해 거래소 측은 “미국 등 고빈도매매가 우리보다 먼저 활성화된 곳에서 투자자 간 속도 격차에 따른 공정성 문제가 대두된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효율적이면서도 안정적으로 시장 운용을 할 수 있도록 대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