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넨 사람도 받은 사람도 “대가성 아니다”… 檢, 신재민 전 차관 신병처리 난감

입력 2011-10-11 00:29

검찰이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사법처리 여부를 놓고 고심 중이다. 사법처리를 하려면 금품의 대가성이 입증돼야 하는데 신 전 차관은 물론 금품 제공자인 이국철 SLS그룹 회장도 한결같이 대가성을 부인하고 있다. 금품은 오갔는데 양쪽 모두 대가성을 부인하는 통상적인 뇌물 또는 알선수재 사건과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심재돈)는 10일 이 회장을 세 번째로 불러 신 전 차관에게 제공했다는 현금, 법인카드, 차량 등의 대가성 여부를 다시 추궁했다. 검찰은 상식적으로 10여년 동안 10억여원이 넘는 금품을 아무 조건 없이 주기는 힘들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신 전 차관에게 뭘 바라고 준 금품이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비슷한 사건을 보면 금품을 받은 사람이 대가성을 부인하더라도 금품 제공자가 대가성을 인정하는 진술을 할 경우 사법처리에 별 문제가 없었다. 청탁의 구체성, 금품 수수자가 실제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액수 등에 따라 구속 기소냐 불구속 기소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가장 중요한 범죄 구성 요건인 대가성이 드러나지 않아 신 전 차관 기소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문제는 검찰이 신 전 차관으로 이번 폭로 사건 수사를 끝내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관계는 확인돼야 하지만 이 회장은 신 전 차관 외에도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현 정권 인사들은 물론 권재진 법무부 장관 등 검찰 출신 인사들의 비리 의혹까지 폭로했다. 이 회장은 본인이 작성했다는 비망록 공개 방침을 밝히며 정치인 등에 대한 추가 폭로도 계획하고 있다.

이 회장은 비망록과 관련, “내가 이틀 동안 연락이 안 되면 비망록을 언론사에 보내도록 조치를 취해 놨다”고 밝혔다. 위키리크스의 줄리안 어샌지가 본인의 연락 두절 시 자동적으로 인터넷에서 비밀 외교문서들이 공개되도록 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이 회장은 “신 전 차관은 이 비망록의 100분의 1밖에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검찰로서는 금품수수 증거가 상대적으로 많은 신 전 차관마저 기소하지 못할 경우 이 회장 폭로 내용 전반에 대한 수사 의지를 의심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신 전 차관 사법처리 여부를 먼저 결론내리지 않고 모든 수사를 마친 뒤 사법처리 대상자를 일괄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