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의구] 이번엔 혹독한 후보 검증해 봅시다
입력 2011-10-10 17:40
현행 공직후보자 인사청문 제도에 대해 김황식 국무총리가 사적인 자리에서 문제의식을 피력한 적이 있다. 지난해 9월 말 이틀간의 ‘청문회 곤욕’을 치르고 무난히 총리 인준을 받은 직후였다. 김 총리는 인사청문회가 지나치게 정치공세의 장으로 활용된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자신이 겪은 위장전입 논란을 들었다. 1981년 당시 지방법원 판사로 발령을 받아 내려갔는데 규정상 운전면허 시험을 주민등록지에서만 치르게 돼있어 잠시 주소를 이전했다. 야당 청문위원이 청문회 전 이 문제를 지적해 당시 불가피했던 사유를 설명했다. 그쪽에서도 분명히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결국 쟁점화하더라는 요지였다. 김 총리는 인사청문회가 내실 있게 치러지도록 제도를 개선해보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성실한 투표는 민주주의 근간
인사청문회의 혹독한 검증에 관한 지적은 여러 차례 있었다. ‘공자가 다시 태어나더라도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나 청문회가 싫어 공직을 거부하는 사례가 속출해 사람 구하기 어렵다는 다소 과장된 여권의 ‘망국론’도 나왔다. 사생활에 관한 부분까지 공개돼 여론의 도마에 오르지 않도록 비공개 서류심사를 확대하자는 개선책도 제시됐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인사청문회가 아니다. 선거를 거치는 선출직 공직자의 경우 검증이 아예 없다시피 하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 지명직과 선출직의 검증 시스템 사이에 느껴지는 불균형은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크다. 유권자들은 후보의 도덕성은 물론 공직자로서의 자질과 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선거란 게 바람을 많이 타고, 정당의 호불호가 표심 향배에 결정적이다보니 후보 개인에 대한 검증은 뒷전으로 밀린다. 후보등록 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등록 서류에 대해 극히 초보적인 조사를 하지만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오직 상대진영에 검증의 의무와 권리가 맡겨져 있지만 ‘네거티브 선거’란 역풍을 맞을 수 있다. 한때 의욕적으로 공직자에 대한 평가자료를 내놓던 시민단체들도 최근엔 활동이 뜸하다.
총선이나 지방동시선거처럼 선거가 다발적으로 벌어질 때 이런 현상은 가중된다. 검증을 떠나 아예 유권자들의 관심 자체가 높지 않다. 교육감 선거의 경우 여당이나 제1야당의 기호를 뽑은 후보가 당선된다는 이른바 ‘로또 논란’까지 있는 게 우리 형편이다. 그런데도 대안은 사실상 없다. 투표에 앞서 후보자질 검증위원회 따위를 만드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필요한 인력과 재원이 방대할 뿐 아니라 정치적 시비에 휘말릴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유권자의 시민의식과 양식의 몫으로 넘어간다. 그러다 보니 한 자리를 두고 2, 3차례 선거를 해야 하는 경우가 빈발한다.
청문회 같은 송곳 검증 필요
10·26 재·보궐 선거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후보자를 둘러싼 각종 검증의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서울시장과 기초단체장 11곳, 광역의원 11곳, 기초의원 19곳 등 모두 우리 지방의 살림을 살거나 이를 감시할 공직자들이다. 하지만 풀뿌리 민주주의란 게 무색할 정도로 관심이 여전히 바닥권이다.
후보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표를 던지는 것은 선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투표권을 성실하게 행사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이번에는 인사청문회 못지않게 혹독한 검증을 한번 해보면 어떨까. 꿈같은 이야기겠지만 성심껏 투표한 다음 일을 제대로 못하면 성난 얼굴로 주민소환장을 내밀어 보면 어떻겠는가. 성의 없이 투표를 하고 정치불신을 외칠 때보다 우리 정치나 공직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지 않겠는가.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