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임병묵] 한약재 유통구조 개혁해야

입력 2011-10-10 17:40


한약의 안전성을 높일 수 있도록 유통구조에 획기적인 변화가 나타날 전망이다. 이 변화의 핵심은 이달 1일부터 그동안 예외적으로 품질검사 없이 단순가공·포장·판매를 허용하여 왔던 한약재 자가규격제도를 폐지하고, 한약재 유통구조를 일원화하는 것이다.

한약재 자가규격제도는 1996년부터 시행된 것으로 ‘한약재 수급 및 유통관리규정’ 제34조2항의 단서조항을 통해 농민들이 자체 생산한 한약재를 별도의 품질검사 없이 한약재 도매상(판매업소)이 단순 가공·포장·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이다. 국산 한약재 생산과 유통을 촉진하고 농가 소득을 증대시킨다는 애초 취지에도 불구하고, 자가규격제도는 품질검사를 면제하는 허점으로 인해 수입한약재가 국산으로 둔갑하고 수입약용작물이 의약용으로 전환되는 부작용을 초래해 왔다.

문제는 단순히 수입산이 국산으로 바뀌는 것뿐만 아니라,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아 의약용으로 적합하지 않은 한약재가 유통되어 소비자에게 투여될 수 있다는 점이다. 종종 언론에 오르내리는 불량 한약재의 유통 문제는 한약과 한방의료 전반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저하시키는 원인이 되어 왔다. 이런 이유에서 한의계에서 자가규격제도 폐지를 요구하여 왔으나, 한약 도매상과 일부 유통을 겸하는 농민들의 저항으로 현재까지 지속되다가 비로소 폐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자가규격제도 폐지와 함께 그동안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한약재의 유통구조도 정비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생산자, 수입자, 제조업소와 도매상 등이 이리저리 얽혀서 한약재를 유통하는 구조였다면, 이제부터는 국내에서 생산하거나 수입한 한약재를 한약제조업소의 품질검사와 관리를 거쳐 도매상을 통해 병의원, 약국에 유통하는 한약유통일원화를 3년간 한시적으로 실시하게 된다. 유통일원화를 통해 한약재 유통의 투명성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며, 한약재 자체의 안전성도 강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약 유통분야는 여러 직능, 집단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기존의 구조에 변화를 주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만큼 이번 유통구조의 개혁이 갖는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불량 수입산 한약재로 훼손된 한약과 한방의료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할 수 있다. 둘째, 한약유통일원화를 통해 한약 도매상의 전문화·대형화를 유도함으로써 한약유통의 경쟁력 강화를 도모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산 한약재의 신뢰 회복으로 국내 한약산업 부흥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약유통 개혁에 뒤이어 한약산업의 발전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수립과 지원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곧 설립될 한약진흥재단이 한약산업 정책 개발과 실행을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담당하기를 기대한다.

임병묵 부산대 교수 한의학전문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