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아! 어머니, 아버지
입력 2011-10-10 17:35
이 세상에 어머니 아버지, 아니 엄마 아빠보다 정다운 호칭이 또 있을까. 어머니는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인간의 본향(本鄕)이다. 끝없는 사랑과 그리움의 대상이다. 그리하여 어머니라는 이름은 부르기만 해도 ‘지체 없이 격렬한 전류가 온다. … 아프고 뜨겁고 견딜 수 없는 전기다’(김남조).
아버지는? 시대가 변해 이전 같은 권위도 위엄도 잃어버린 슬픈 존재가 돼 버렸지만 그래도 옹벽이다. 세상의 풍파를 막아 가족을 지켜주는 울타리다. 그래서 아버지라는 이름에는 ‘저녁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김현승)가 하면 ‘꽝꽝 얼어붙은 잔등으로 혹한을 막으며 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려 있던’(이수익) 모습이 담겨 있고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왔으면서도 ‘미소하는’(박목월) 얼굴이 숨어 있다.
그런데 이 부르기만 해도 가슴 뭉클해지는 호칭이, 국어학자 천소영 교수에 따르면 ‘태어나 맨 처음 배우는 말인 동시에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되뇌는 삶의 최종 언어인 부모칭’이 공식 문서에서 사라져간다고 한다. 영국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오는 12월부터 여권 신청서의 부모 인적사항을 적는 난에 아버지 어머니 대신 ‘부모 1(Parent 1)’ ‘부모 2’라는 용어를 쓰기로 했다.
동성(同性)부부들이 입양 자녀의 여권을 신청할 때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모의 성적 정체성을 표기하는 것은 성적 차별이라고 반발해 온 것을 수용한 결과다. 동성부부는 ‘진보’적 입장에서 동성애가 성적 취향으로 인정됨에 따라 세계적으로 점차 공식화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이와 함께 여권의 남(Male) 여(Female) 표시도 없애야 한다는 동성부부와 성전환자, 양성보유자들의 주장도 받아들여 성별 구분 정보도 삭제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덕분에 공공 서류의 성별 구분(Sex) 난에 ‘1주에 2∼3회’라고 썼다는 조크는 사라지게 생겼거니와 그거야 그렇다 치자. 하지만 앞으로 ‘부모 1’ ‘부모 2’라는 진보적 호칭이 이른바 ‘진보파’가 득세하는 우리나라에서도 일반화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우선 세계적으로 알려진 신경숙 작가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만 해도 ‘부모 1(또는 2)을 부탁해’로 바꿔야 할 것이고, 거의 클래식이 돼 버린 대중가요 ‘비 내리는 고모령’도 ‘부모 1(또는 2)의 손을 놓고 떠나올 때엔’으로 바꿔 불러야 할 판이다. 아무리 진보도 좋지만 어머니 아버지라는 호칭까지 없앤대서야 원….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