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
입력 2011-10-10 17:59
다니엘 3장 13∼18절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어도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는 삶을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세상의 모든 가치 있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가치 있게 여기겠다는 삶의 작정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보여준 믿음의 모습을 통해 오늘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보겠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어떤 신앙이었습니까.
첫째, 세상의 우상을 섬기지 않는 신앙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높이 30m, 폭 3m나 되는 거대한 금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금 신상에게 절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만일 절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즉시 맹렬하게 불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겠다고 엄히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아끼는 다니엘의 친구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 그리고 아벳느고가 절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세 사람은 왕이 믿었고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한다면 세 사람은 느부갓네살 왕을 위해 신상에 절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인간관계 때문에 쉽게 신앙을 저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진급에 지장 있을까봐, 거래가 끊길까봐, 소득이 감소할 것 같아 신앙 양심을 잠시 접어둘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살면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는 것은 모두 우상이 됩니다. 우상을 섬겨서라도 세상의 유익을 보려는 마음이 강하면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습니다. 물질이 우상이 되고 명예가 우상이 되는 세태에서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는 성도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둘째, 죽음의 위협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 느부갓네살 왕의 명령을 거절할 경우 불같은 왕의 진노가 쏟아질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절박한 순간입니다. 불순종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절대적인 권세자에게 불순종이 죽음이라면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의 결과는 어떤 것일까요. 풀무불 앞에 있는 세 사람은 느부갓네살 왕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느부갓네살 왕은 그들에게 절하고 살겠느냐 아니면 고집 부리다 죽겠느냐, 선택하라고 합니다. 지금 북한의 성도들도 그런 선택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가까운 중국에 있는 성도들도 그런 선택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죽겠느냐 아니면 예수를 버리고 살겠느냐 하는 선택입니다. 그것은 순간순간 신앙이냐 불신이냐 결단을 해야 하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셋째, 순종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왕의 협박과 회유 앞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금 신상에게 절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16∼18절).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고 살겠다는 대답입니다. 하나님이 풀무불에서 건져주시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을 경배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 그리고 아벳느고는 순종의 결과에 상관없이 하나님만 경배하는 삶을 결단했습니다. 이것은 옛날 옛적 전설 같은 신앙 선배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순간순간 우리의 믿음과 양심을 옥조여오는 세상을 향해 강하고 담대하게 우리의 믿음을 표현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지금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하고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아닐까요.
안용호 목사 용인 기흥지구촌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