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약국

입력 2011-10-10 09:44

장 항아리와 목사



어제 말갛게 닦아 놓은 항아리들을

어머니는 오늘도

닦고 또 닦으신다.

지상의 어느 성소인들

저보다 깨끗할까

맑은 물이 뚝뚝 흐르는 행주를 쥔

주름투성이의 손을

항아리에 얹고

세례를 베풀 듯, 어머니는

어머니의 성소를 닦고 또 닦으신다.

-고진하, ‘어머니의 성소’-

해마다 교회에서는 장을 담근다. 교회가 장을 담그는 게 아니라 여성 교우들이 담그는 장이다. 예배당 옥상 위에 커다란 장독 두서너 개를 올려다 놓고 거기에 간장, 된장, 고추장을 담는다. 햇살 좋은 날은 장독 뚜껑을 열고, 궂은 날은 꿈쩍 않게 뚜껑을 닫고를 반복하면서 빛깔이 들고 맛이 깊어지면 그걸로 주일마다 교우들이 먹는 음식의 기본을 삼는다. 그래서 우리 예배당은 ‘목사의 설교보다 밥맛이 더 좋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난 해 가을, 아직 된장 빛깔이 제대로 들지 않은 누런 장이 우리 집으로 내려왔다. 햇된장이니 목사님 먼저 드셔 보라는, 뭐 그런 뜻에서였다. 살짝 맛만 보기에는 양이 제법 많아서, 항아리에 담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밥그릇에 담아 둘 수도 없는 터라 플라스틱 통에 담아 냉장고 맨 밑에 뒀었다. 외식이 잦고 식구가 없으니 된장 먹을 기회가 없었다. 그렇게 냉장고 밑에서 된장은 숨죽이고 1년을 났다.

지난 여름, 장마가 지나고 나서 냉장고를 청소하다가 그 된장 플라스틱 통이 눈에 들어왔다. 열어 보았더니 된장 위로 물이 흥건하게 생겨 찰랑거린다. 살림을 잘 모르는 내 눈에도 가만 두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층 내 방 앞 베란다로 장 그릇을 올려다 놓았다.

아침에 하늘을 쳐다보고 맑을 것 같으면 뚜껑을 열어 놓고 출타를 하고, 돌아와선 제일 먼저 장 그릇 덮개를 덮는 게 내 일과 중의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차츰, 장 그릇을 열어두고 먼 곳에 있을 때 하늘이 흐려지면 가장 먼저 장 그릇 걱정이 생기는 게 아닌가? 아침에 하늘이 침침해서 장 그릇의 덮개를 닫아 두고 외출을 했는데 해가 쨍쨍 나면 반대로 장 그릇 덮개를 열지 않고 외출을 한 게 후회스러워졌다. 어느 날은 교우들과 심방을 하다가 나도 몰래 “아! 장독 뚜껑을 열어 놓고 왔는데!!” 해서 동행한 교우들이 까르르 웃기도 했다.

가을이 되었다. 물 반 장 반이던 된장이 어느 새 꾸둑꾸둑해졌다. 옛날 어머니가 가졌음직한 뿌듯함이 장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을 차지했다. 작은 항아리를 구해다가 된장을 퍼 옮기고, 베란다에 벽돌을 올려서 제법 장독대 비슷하게 만들었다. 어설프게 마련된 장독을 보면서, 달랑 한 개밖에 되지 않는 장 항아리를 닦으며 젖은 나무 같던 내 영혼은 얼마나 천국의 온습도로 변했을까 궁금하다. 물기 많던 된장도 여름내 햇살에 굳고, 만물은 저마다 한 해의 삶을 열매로 하늘과 대지에 바치는데 말이다.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렴이라."(벧후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