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평화의 씨앗 뿌리는 따스한 빛… 프랑스서 50년째 활동 방혜자 ‘빛의 울림’전

입력 2011-10-09 17:29


프랑스에서 50년째 활동 중인 방혜자(74·아래 작은 사진) 화백은 ‘빛의 작가’로 불린다. 그의 그림에는 늘 다양한 이미지의 빛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랑과 평화의 씨앗을 세상에 뿌리겠다는 취지로 그려내는 아름답고 따스한 빛. 작가는 여덟 살 때 우연히 개울가 조약돌 위에서 햇빛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저런 것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던 게 빛을 탐구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서울 근교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서예를 즐기던 어머니와 화가였던 외할아버지, 시인이었던 사촌오빠 등 가족들의 영향으로 문학소녀의 감수성을 키웠다. 하늘과 별, 나무와 꽃, 바람과 물소리 등을 소재로 시를 짓던 그는 고교 때 김창억 미술교사로부터 그림에 대한 소질을 인정받았다. “그림은 손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리는 것”이라는 격려에 힘입어 서울대 미대를 진학했다.

대학 시절 이우환 김종학 윤명로 김봉태 등 훗날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게 된 쟁쟁한 동기생 가운데서도 섬세한 붓질이 돋보여 당시 장욱진 지도교수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대학 3학년 때인 1958년에 그린 ‘서울풍경’은 해질녘 도심 풍경을 어두운 분위기로 묘사했으나 한쪽 모퉁이에서는 한줄기 빛이 희미하게 반짝인다. 이때부터 이미 ‘빛의 작업’은 시작된 것이다.

대학 졸업 후 프랑스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서 벽화를 공부한 그는 끊임없는 열정으로 국내외 화단에서 호평받으며 명성을 얻었다. 그가 프랑스로 떠난 지 50주년을 맞아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본관과 두가헌 전시장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연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의 작업과 올해 신작 등 추상화 50여점을 ‘빛의 울림’이라는 타이틀로 선보인다.

갤러리에서 만난 작가는 “한 점의 빛에서 무궁한 빛이 나오고 50년이 지나 그것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주는 전시”라고 설명했다. 한지와 부직포, 흙과 광물성 천연안료, 식물성 염료가 어우러져 자연 속 빛의 찬란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수평선 저편에 아득히 보이는 한줄기 빛을 연상시키는 ‘바다의 침묵’, 불꽃이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의 ‘빛의 춤’ 등이 아름답다.

방 화백은 50년간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면서 소설가 박경리 박완서 등 문화계 인사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살아생전 박경리씨는 “방혜자의 그림은 우주적이며 유현(幽玄)하다. 조그맣고 가냘픈 모습을 떠올릴 때 크고 깊은 그의 그림 세계가 신기하기만 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수직(手織)의 무명 같은 것, 그런 해뜨기 전의 아침을 느낀다”고 평했다.

칠순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소녀 같은 모습으로 작업을 계속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오늘도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즐겁다”며 “우리 모두 세상에 올 때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는데 제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빛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위로받고 치유되고 미소 지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02-2287-3591).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