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남중] 비정치의 정치

입력 2011-10-09 17:50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자 선출 이틀 전, 한 후보의 캠프 인사들과 점심을 먹었다. 그들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조직 동원이 승부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변호사와의 야권통합후보 결정전도 결국 당이 이길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노회한 그들은 인기나 아마추어 같은 말에 코웃음을 쳤다. 그들은 정당 조직이나 정치인 경력을 들먹이며, 그것이 정치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그 캠프는 당내 경선에서 졌다. 그 당의 후보는 며칠 뒤 시민후보에게 무너졌다. 그리고 또 며칠 뒤, 야권통합 서울시장 후보인 박 변호사는 민주당 입당을 포기했다. 제1야당은 이로써 완벽하게 패배했다.

시민후보를 표방하는 박 변호사는 오는 26일 국내 최대 정당인 한나라당과 대결한다. 대통령 선거 다음으로 큰 선거라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무소속과 정당이 맞대결하는 초유의 사건이다. 만약 무소속이 이기게 된다면 한국 정당은 뭐가 되는 것일까?

평생 정치와 담을 쌓아온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호출되고, 당선 가능성이 높은 서울시장 후보가 정당을 거부하는 상황은 비정치적인 것이 정치적이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정치와 거리를 두면 둘수록 더 정치에 가까워지는 ‘비정치의 정치’는 한국 정치의 두드러진 특징이 되고 있다.

그러나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현실 정치인 가운데 가장 정치인답지 않은 포즈를 취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인기가 일단 그렇다. 따지고 보면 이명박 대통령도 정치와의 거리두기로 집권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나는 정치인 출신이 아니다”는 말을 수시로 해 왔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어떤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힘은 정치에 대한 불신과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에서 나왔다.

비슷한 사례들은 얼마든지 있다. 야권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나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민주당과의 합당이나 입당을 한사코 주저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후보로 비정치적이고 중립적인 이미지의 김황식 국무총리를 차출하려고 애썼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날 점심에 그들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정치의 힘’을 역설했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 정치를 지배해온 건 비정치였다. 이 비정상성의 한가운데에 한국 정당의 문제가 있다. 서울시장 선거, 총선, 대선 등 내년 말까지 이어질 선거의 시기에서 ‘정당의 굴욕’은 얼마나 더 반복될 것인가.

김남중 차장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