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홍순영] 스피노자와 중소기업
입력 2011-10-09 17:43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여도 오늘 중소기업을 창업하겠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실천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가 21세기에 태어났다면 이같이 말했을 것이다. 그것만이 오늘의 지구촌 문제를 해결해 줄 희망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미국을 주시하고 있다. 직장을 찾지 못한 수만 명의 청년들이 금융자본의 규제, 부자의 세금인상, 일자리 창출 등을 외치며 월가에서 시작된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은행이 세제 및 금융제도 개혁에 나섰고, 조셉 스티글리츠 등 경제학자, 조지 소로스 등 억만장자들도 시위를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부자들의 세금을 올리고, 금융시스템을 일부 개혁한다고 시위의 근원인 18%를 넘어서는 청년 고실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스럽다. 미국 경제, 아니 더 심각한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30∼45%까지 이르는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고용의 원천인 중소기업의 창업을 활성화하고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다. 21세기 스피노자의 외침과 실행이 절실히 요청된다는 것이다.
남유럽 국가들이 촉발하고 있는 글로벌 재정위기를 근본적으로 극복하는 길도 중소기업의 창업 확산과 성장 지원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과 세수를 증대하여 재정을 건전화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중소기업은 실업 문제만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은 자신의 본질인 창의, 도전, 혁신, 경쟁, 기민함을 통해 경제의 역동성을 제고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발전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견인한다.
한국경제가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조기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중소기업의 성장과 고용창출 덕분이었다. 중소기업은 외환위기 이후 2008년까지 10년간 380만개 일자리를 늘린 반면, 대기업은 60만명을 줄였다. 중소기업이 고용창출을 통해 경제파국을 막고 경기회복을 이끈 것이다. 우리 중소기업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고용을 늘리거나 적어도 줄이지 않음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일찍 위기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세계 각국은 위기 때, 아니 위기일수록 중소기업 창업과 성장을 지원하는 재정만은 확실히 확보해야 한다. 위기일수록 나라의 곳곳에 스피노자의 사과나무, 중소기업을 더 많이 식목하고 가꾸어야 한다.
한국경제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청년실업률 7%대는 비록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 비해 훨씬 낮지만 ‘이태백(20대 청년의 태반이 백수)’이라는 말의 회자에서 보듯이 고학력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중소기업의 창업을 더욱 활성화하고, 성장지원 정책을 잘 수립하여 저변을 확대하며, 글로벌화에 더 속도를 내야 함은 당연하다.
물론 이는 정부만의 일이 아니다. 금융기관은 성장단계별 맞춤형 신용대출 지원의 확대, 대기업은 진정한 공생과 동반성장의 가속화, 국민과 청년은 중소기업 제품의 적극적 이용과 취업을 통해 중소기업의 육성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특히, 고용창출에 기여도가 큰 고성장형 중소기업의 창업 지원과 육성을 위해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언론도 청년들의 중소기업에 대한 편견 해소와 인식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 며칠 전 워싱턴 한·미경제세미나에서 IMF의 수비르 랄 한국담당 과장이 말한 대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다시 와도 한국경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지속가능한 고성장의 길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홍순영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